[횡설수설/하태원]밴플리트賞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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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4월 4일. 60년 인생 중 가장 길고 깊었던 밤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은 한 노병(老兵)의 눈가가 조금씩 젖어 들었다. 오전 1시 5분 군산기지를 출발해 북한 평양 부근 폭격에 나선 아들의 B-26 폭격기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 눈물이 이 편지를 적시지 않았으면 합니다…’라며 시작했던 아들의 마지막 편지를 떠올렸다. ‘모든 사람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싸우는 아버지에게 조그마한 힘이 되기 위해’ 6·25전쟁에 참전했다는 아들 아니었던가. 아들의 뜻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 마지막 군인의 길이었다.

▷1951년 4월부터 미8군 사령관으로 활약한 6·25전쟁의 영웅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1892∼1992) 이야기다. 전쟁 중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를 직위해제했던 해리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도 1953년 그의 전역식에서 “단언컨대 밴플리트는 미국이 낳은 최고의 명장(名將)”이라고 치켜세웠다. 육군사관학교 교정엔 그의 동상이 있다. 1951년 10월 육사가 4년제 대학과정으로 재(再)개교하는 데 기여한 공로다. 동상 건립 비용은 주한미군이 자발적으로 모금했다.

▷그의 ‘위대한 마음’은 1992년 밴플리트상(賞)으로 회생했다. 1957년 설립된 비영리 민간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는 매년 한미관계에 기여한 인물을 선정해 뉴욕에서 열리는 연례만찬 때 상을 준다. 김대중 대통령,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 한덕수 한국무역협회장 등이 역대 수상자다.

▷올해는 이례적으로 지난 60년간 한미동맹 강화에 기여한 한국과 미국의 외교관 일동에게 상이 돌아갔다. 시상식에는 한국 대표로 안호영 주미 한국대사가, 미국 대표로는 성 김 주한 미국대사가 멋들어진 나비넥타이를 매고 참석했다. 양국 앞에는 현재 방위비 분담금 협상, 원자력협정 개정, 전시작전통제권 재(再)연기 등의 난제가 놓여 있다. 환갑을 맞은 혈맹정신으로 윈윈의 결과를 내놓길 기대한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6·25전쟁#제임스 밴플리트#육군사관학교#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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