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진영 장관을 보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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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정치부장
박성원 정치부장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어르신들 모두에게 (기초노령연금 20만 원을)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가 생겨서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과한 국무회의에서 새삼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다.

기초연금안의 축소·조정을 앞두고 해외 출장 중에 측근을 통해 사퇴 의사가 알려졌던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기초연금 수정안 발표를 앞두고 제기된 사퇴설과 진 장관의 행적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진 장관은 전날 귀국하면서 사퇴 고려 이유로 알려진 기초연금 공약 후퇴 책임론에 대해 “와전된 것”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정치권에서는 진 장관이 공약 후퇴 책임을 떠안고 사퇴하는 방안을 청와대와 타진하는 과정에서 언론에 노출되자 기초연금 수정안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질 것을 우려해 급히 덮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더욱 궁금증을 자아낸 것은 2주 전쯤 그가 “국민이 요구하는 복지부 장관으로서 역할을 하기 어렵겠다”면서 그 이유로 “보육 문제와 관련해 정부와 서울시의 갈등에서 무력감과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는 점이다. 그는 “예산은 기획재정부가, 인원은 안전행정부가 꽉 쥐고 있어 복지부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말도 했다. 이명박 정부 말 임채민 당시 복지부 장관에게 0∼2세 무상보육 문제 해결을 압박했던 진 장관은 자신이 이 자리를 맡은 뒤 복지 공약과 재원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다는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진 장관이 누구인가. 3선 의원으로 박 대통령의 한나라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고 지난 대선 땐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에 이어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을 맡아 한때 총리 물망에도 올랐던 실세 아닌가. 그런 그가 “예산, 인원 때문에 장관직 못해 먹겠다”로 들릴 법한 소리를 한다면 예산 제약과 스텔스 성능을 갖춘 전투력 사이에서 차세대 전투기 결정 유보라는 고뇌 어린 결론을 내야 했던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벌써 그만뒀어야 할 것이다.

진 장관은 지난해 7월 당 정책위의장 시절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책임을 지고 이한구 당시 원내대표와 동반 사퇴한 뒤 이 원내대표의 복귀에도 불구하고 1개월 넘게 사퇴 입장을 고수한 일이 있다. 그렇게 책임감이 강해 보였던 그가 장관으로서 진퇴를 너무 쉽게(본인은 오랜 고민의 결과라 해도) 생각하는 듯이 비치는 것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안 그래도 시중에는 대통령이 공약을 못 다 지키게 된 데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비록 어려운 경제상황과 부족한 세수(稅收)를 고려한 ‘결단’이라 해도 줬다 빼앗는 모양새만큼 사람을 화나게 하는 것도 없다. 기초연금뿐만 아니라 4대 중증질환 보장, 반값등록금 등 박근혜 정부의 주요 복지공약이 돈에 발목이 잡혀 줄줄이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당 정책위의장으로서 이런 공약들을 성안(成案)했던 진 장관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대며 뒷걸음질 치는 듯한 모습은 박 대통령이 공언한 원칙과 소신에도, ‘책임장관’의 모습에도 걸맞지 않다.

진 장관은 2006년 자서전 ‘인간의 얼굴을 한 자유주의자의 세상읽기’에서 “나는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치를 추구하는, 깨끗하고 진실한 정치인이 되기를 원한다”고 썼다. 지금이야말로 진실한 태도로 상황을 수습해야 할 때다. “고통스러운 선택이 없는 미사여구는 전략이 아니다”고 강조하는 리처드 루멜트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앤더슨 경영대학원 교수의 조언이 참고가 될지도 모르겠다.

박성원 정치부장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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