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범 “정치논리에 변질된 경제민주화, 동반성장을 괴물로 바꿔놓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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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범 경총회장의 쓴소리

6일로 취임 3주년을 맞은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6일로 취임 3주년을 맞은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시장경제를 전부 법으로 다스리려고 한다?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64)은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LG트윈타워 집무실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권의 입법 만능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최근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추진하는 각종 법과 정책이 오히려 사회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공공기관이 매년 정원의 3% 이상을 청년층으로 신규 채용하도록 의무화한 청년의무고용제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정치권이 청년실업 해법으로 29세 이하 청년의무고용제를 제시했습니다. 결과는 30대의 반란이었습니다. 그러자 부랴부랴 34세까지 포함시키는 안을 내놓았죠.”

그는 상법 개정안,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화평법) 제정, 유해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개정에 대해서도 “모든 것을 법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발상”이라며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이 지적하지 않았다면 큰 문제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9월 경총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한 차례 연임해 6일로 취임 3주년을 맞았다. 그사이 경제민주화는 국내에서 화두가 됐다. 이 회장은 “2011년 미국 ‘월가의 분노’ 등의 영향 때문에 누가 (대통령 후보로) 나왔어도 경제민주화를 내걸었을 것”이라며 “경제민주화 자체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정치권의 과도한 정치 이슈화가 경제민주화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생(相生)도 처음에는 좋은 의미였는데 동반성장, 경제민주화로 이어지더니 초과이익공유제까지 등장했습니다. 결국 과도한 정치 이슈화가 동반성장을 (시장경제를 위협하는) 괴물로 바꿔놓았습니다.”

이 회장은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보다는 산업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 100년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정부가 고용률 70%를 달성하려면 노동시장 유연화가 먼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통상임금 범위 확대 논란에 대해 “대부분의 노사가 1988년 정부가 만든 통상임금 산정 지침을 따르고 있는데 이를 아니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법체계가 다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체휴일제 도입 역시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임금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노동생산성은 임금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한다”며 “법정공휴일(연간 15일)도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보다 많은데 무조건 놀자고 할 때냐”고 반문했다.

이 회장은 한국의 경제성장을 주제로 강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최근 에티오피아에 다녀왔다. 그는 “일부 대기업 귀족노조는 (경제수준이 급락한) 에티오피아에 가봐야 뭐가 진짜 문제인지 깨달을 수 있다”고 말했다. 1960년대 말까지 번영을 누렸던 에티오피아가 분배에 치중한 결과 경제 성장이 정체되고 빈부 격차가 심해진 현실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 회장은 국내 산업의 도약을 위해 ‘역(逆)발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운 관련 기업이 가장 많은 나라는 바다가 없는 스위스입니다. 스위스 정부가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줬기 때문이지요. 무조건 규제하려 들지 말고 생각을 과감히 바꿔야 합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이희범#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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