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추기경에게 10여분 고백성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남기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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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엽 신부가 본 최인호 작가의 마지막 모습

허영엽 신부
허영엽 신부
23일 오전 11시 반경 최인호 베드로 선생이 아주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다. 곧바로 정진석 추기경께 전화를 걸어 병자성사(가톨릭에서 마지막에 병자에게 주는 성사)를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추기경은 최 선생을 바로 병문안하겠다고 하셨다.

추기경이 도착하기 전 나는 서울성모병원에 도착해 병실을 지켰다. 최 선생은 살이 아주 많이 빠져 병색이 짙었고, 잘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래도 나를 보자 눈을 마주치고 웃음을 지어주며 손을 내밀었다. 잡은 손의 힘이 너무 없어 가슴이 아팠다.

드디어 오후 2시경 추기경이 병실에 도착했다. 선생은 추기경을 보자 병색이 짙은데도 미소를 지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추기경은 최 선생의 두 손을 잡고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아주 오랫동안 가만히 최 선생의 눈만 쳐다봤다.

추기경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고 최 선생의 눈도 빨갛게 충혈됐다. 그리고 고백성사를 위해 두 사람만을 남겨둔 채 다른 이들은 병실을 나왔다. 10여 분 후 고백성사를 끝낸 최 선생의 얼굴은 한결 편해보였다.

다시 병자성사가 진행됐다. 성체는 최 선생이 목이 아파 넘길 수 없어 딸과 며느리가 대신 모셨다. 추기경은 “따님과 며느님이 선생님을 대신해서 하는 것이에요”라고 하자 최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추기경이 병자성자를 마친 뒤 “이제 모든 죄로부터 용서받으셨어요. 평안하세요”라고 하자 선생은 활짝 웃었다. 옆에서 딸이 “아버님이 정말 오랜만에 웃으신다”며 좋아했다. 최 선생은 마지막을 직감했는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무척 힘든 상태임에도 자꾸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언젠가 최 선생은 유교와 불교에 대해 소설을 썼는데 마지막으로 꼭 예수에 대해 쓰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그럼 이스라엘에 한번 가야죠”라고 한 적이 있다. 방을 나서는 추기경에게 최 선생은 다시 쇳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내가 방을 떠나면서 두 손을 잡고 “선생님, 지난번 전화에서 ‘사랑합니다’라고 하셨는데 저도 사랑합니다”고 하자, 최 선생은 힘겹지만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 짧은 대화가 긴 이별의 인사가 되어 버렸다.

마지막까지 어린아이처럼 웃으시며 한 말씀이 귀에 맴돈다. “감사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비서실장
#최인호 별세#허영엽 신부#정진석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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