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상 받으니 국제 작가란 느낌… 국경 넘은 관심에 큰 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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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박경리문학상에 메릴린 로빈슨]

단 세 편의 소설로 영미권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메릴린 로빈슨은 기독교적 휴머니스트로서 현실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발언해 왔다. 구글 검색 이미지
단 세 편의 소설로 영미권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메릴린 로빈슨은 기독교적 휴머니스트로서 현실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발언해 왔다. 구글 검색 이미지
■ 수상자 로빈슨 인터뷰

“수상 소식을 접하고 국제 작가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느낌이 들어 매우 기뻤습니다. 한국에 자국의 문화 경계를 넘어 동시대 문학에 관심을 기울여 주는 상이 있다는 사실이 저처럼 다른 나라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제3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인 메릴린 로빈슨(70)은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수상 소감을 밝혔다. ‘하우스키핑’(1980년), ‘길리아드’(2004년), ‘홈’(2008년), 이 세 편의 장편소설로 미국 문학의 고전작가 반열에 올랐다는 찬사를 받는 로빈슨은 기독교적 휴머니즘에 기반을 두고 현실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다음 달 내한해 시상식을 비롯한 각종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에임스 목사가 어린 아들에게 남긴 서간문 형식의 대표작 ‘길리아드’를 쓸 때 장 칼뱅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칼뱅의 영향 아래 제네바에서는 유럽의 다른 나라에선 금지됐던 기독교 성서의 번역과 인쇄가 이뤄졌고 여자아이도 남자와 똑같이 교육받아 그 지식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 모두 인간 개개인이 신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가치를 부여하고 인간 정신과 양심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칼뱅의 사상을 담은 저작은 북미를 비롯한 전 세계에 영향을 줬고, 나 역시 큰 영향을 받았다.”

―‘길리아드’의 결론을 보면 에임스 목사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사이의 화해를 모색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작가의 세계관과 무관치 않을 것 같다.

“나는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리버럴)로 생각하지만 과거에 큰 관심을 갖고 과거를 존중한다는 점에서는 보수적이다. 나는 토머스 제퍼슨이나 에이브러햄 링컨 같은 이들이 가졌던 사상과 식견이 과거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를 해방시키는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믿는다.”

―‘길리아드’와 ‘홈’의 공간적 배경인 길리아드(길르앗)라는 마을 지명은 기독교 성서에도 자주 등장한다. 길리아드라는 공간이 작가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성서에서 길리아드는 치유와 재생의 공간이다. 초기 미국 정착민들은 노예제 같은 죄악에 물들지 않은 선한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희망을 담아 자신들의 마을 이름을 길리아드로 붙인 경우가 많았다. 선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희망과 이로 인한 실망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공간이 길리아드다.”

―논픽션 ‘모국’에선 영국의 핵 재처리 과정을 둘러싼 정치적 부패와 환경오염 문제를 다뤘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 사람의 기독교적 휴머니스트로서 전 세계적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너무 과중한 부담을 지우는 경제 구조에 충격을 받았다. 이것은 지구 차원의 문제다. 세계 평화를 지켜온 정치구조가 지난 60여 년간 계속 약화돼 온 것도 우려한다. 이 두 문제는 긴밀히 연관돼 있다.”

―박경리 선생의 작품을 읽어봤나.

“아쉽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다만 박경리문학상이 선생의 이름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의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내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수상의 영예까지 안겨줘 감사하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여러분의 자랑스러운 나라 한국을 방문하게 되길 고대한다.”  
시적 산문 압권… 美문단 대가 반열 올라
■ 로빈슨의 작품세계


1943년 미국 아이다호 주 샌드포인트 태생의 메릴린 로빈슨은 미국 브라운대와 워싱턴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1980년 첫 소설 ‘하우스키핑’으로 헤밍웨이재단 펜상을 수상했고, 2004년작 ‘길리아드’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휩쓸었다. 그 자매편 격인 ‘홈’(2008년)으로 오렌지상을 수상하며 현대 미국 문단의 대표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그를 “무서운 지성을 가진 천재 작가”라 평하기도 했다.

▶본보 6일자 A21면 [제3회 박경리문학상 최종 후보자들]<4>미국 소설가 메릴린 로빈슨

정확하고 고도로 정련된 그의 문장은 ‘시적인 산문’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답다고 평가받는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은 “로빈슨의 문장 하나하나가 즐거움이라 그의 소설은 천천히 여러 번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 칼뱅, 찰스 다윈, 프리드리히 니체 같은 인물을 재평가한 에세이집 ‘아담의 죽음’(1998년)으로 국제펜클럽(PEN)에서 주는 에세이예술상을 받았다. 그의 저작은 현재 전 세계 30여 개 언어로 번역됐다. 로빈슨은 영국 옥스퍼드대, 미국 브라운대와 노터데임대에서 명예박사(영문학)를 받았고, 올 7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전미 인문학 메달을 받았다. 1990년부터 미국 아이오와대 작가 워크숍 교수로 재직 중인 로빈슨은 내년 가을 출간을 목표로 네 번째 소설이자 길리아드 연작의 3부에 해당하는 ‘라일라(Lila)’를 집필 중이다.  
박경리 ‘토지’와 주제 비슷… 완성도-호소력 국경 초월
■ ‘로빈슨 문학’ 심사평


메릴린 로빈슨은 한국에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첫 작품을 발표한 지 23년이나 지났지만 우리가 로빈슨에 대해 제한적으로밖에 알지 못하는 것은 작가로서의 연륜이 짧아서다. 그의 작품이 시에 가까운 ‘정신적 산문’으로 쓰여, 그 언어가 지닌 우아한 아름다움과 향기를 우리말로 그대로 옮기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도 이에 일조했다.

로빈슨 작품의 소재와 배경은 평범해 보이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타락하고 오염된 도시적인 것과는 다르다. 전통의 흐름 속에서 낯선 언어로 절묘하게 표현된 로빈슨의 작품을 주의 깊게 읽으면, 물질주의와 기계문명이 가져온 온갖 폭력과 소음, 광란과 분노에서 벗어나 그동안 잊고 지낸 정신적 삶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는 즐거움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는 그리스 고전과 기독교 성경의 전통 속에서 작품을 썼지만 이를 새롭게 계승해 발전시키는 모습을 보인다. 평범한 삶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남다른 눈을 가진 그는 일종의 가족 소설을 썼지만, 인간의 운명적인 실체를 규명하고 이를 초월하려는 욕망과 좌절, 삶의 여정에서 비롯되는 사랑과 죽음, 그리움과 고독 같은 복합적 주제를 미묘하게 다루고 있다.

로빈슨은 거대한 우주적인 존재 문제를 배경으로 미국의 역사, 즉 고향에 대한 애정, 토지에 대한 집착과 소외, 대자연과의 싸움, 그리고 죄와 구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 역사의 내면 구조를 형상화한 박경리의 ‘토지’가 다루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로빈슨 소설의 환경과 특수성은 철저히 미국적이지만, 그 완성도와 호소력은 국경을 초월한다.

로빈슨은 최종후보에 올랐던 다른 작가에 비해 젊은 편이라 앞으로도 훌륭한 작품을 계속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이번 수상 결정이 작가가 물질주의의 어둠 속에 묻혀버릴 위험에 놓인 참된 문학 정신을 회복시키는 위대한 작품을 쓰는 데 격려와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제3회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
이태동(위원장), 앨버트 젤피, 문상영, 서숙, 안선재(브로더 앤서니), 이세기, 장경렬  
영미권 후보군 인품-사회기여까지 평가
■ 제3회 박경리문학상 심사과정


지난해부터 세계문학상으로 변신한 박경리문학상은 작품성 외에도 작가의 인품, 사회적 기여까지 종합 평가한다.

박경리문학상위원회(위원장 이어령, 위원 장명수 정창영 최일남 최문순)는 지난해 심사위원회를 꾸렸고 국내외 대형 출판사와 문학단체, 해외문학 전문가에게 1차 후보자 추천을 의뢰했다.

심사위원들은 올해 5월까지 5회에 걸쳐 후보자를 집중 심사해 최종후보를 5명으로 압축했다. 올해는 깊이 있는 심사를 위해 영미권 작가로 후보군을 좁히고 영미권 출신 심사위원 2명을 합류시켰다. 내년부터는 권역별로 돌아가며 수상자를 선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심사위원회(위원장 이태동)는 최종심사에서 메릴린 로빈슨을 내정했고, 박경리문학상위원회가 이를 최종 추인했다. 시상식은 다음 달 26일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서 열린다. 원주시 토지문화관과 박경리문학공원 일대에서는 다음 달 12∼29일 ‘2013 박경리문학제’가 개최된다. 29일 서울 연세대에서 수상작가 로빈슨의 강연도 있을 예정이다. 033-762-1382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메릴린 로빈슨#박경리 문학상#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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