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손선홍]빌리 브란트 탄생 100주년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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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선홍 주함부르크 총영사
손선홍 주함부르크 총영사
최근 일본 정치인들이 과거에 대한 반성도 없이 점차 우경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바로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가 1970년 12월 바르샤바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과거의 잘못을 사죄하는 사진이다. 최근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은 프랑스의 한 마을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다카우 수용소 기념관에서 사죄하는 등 독일 지도자들은 과거를 끊임없이 반성하고 있다.

올해로 빌리 브란트(1913∼1992)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었다. 브란트는 1969년 10월 총리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독일에 두 개의 국가가 있으나 동독은 외국이 아니며, 동·서독 관계는 ‘특별한 관계’임을 강조했다. 브란트는 분단으로 인한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는 ‘작은 걸음의 정책’을 표방하며 동독의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해결하고자 했다.

결국 브란트가 추진한 동방정책은 결실을 맺어 서독은 소련 및 동유럽 국가와의 관계를 개선했다. 이어 서독은 1972년 동독과 기본조약을 맺어 상주대표부를 교환하고, 유엔에도 함께 가입했다. 상호방문과 통화 등 동·서독 교류도 크게 늘어났다.

브란트는 1989년 10월 말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이때는 동독 주민들이 헝가리와 체코 등을 통해 서독으로 한창 탈출할 때였다. 그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강연도 했고, 텔레비전 대담도 했다. 브란트는 조심스럽게 한국의 통일이 먼저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일통일에 필요한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의 승인이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독일로 귀국 후 2주 만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그 이듬해 통일이 되었다. 브란트는 79세의 일기로 떠났으나, 그는 통일의 토대를 마련했고, 또 독일의 과거를 반성하는 참모습을 남겨놓았다.

미래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의 통일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될 것인가를 예측하기는 더욱더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독일 통일이 예고 없이 이루어졌고, 또 강력했던 소련도 무너졌으며, 북아프리카의 정치적 변화도 일어났다.

아직은 한반도에는 눈에 띄는 통일의 조짐이 없지만, 그 조짐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통일에 대한 확신과 희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을 더 많이 알아야 하고, 경제력을 더 크게 키우면서 주요국과의 외교를 강화하면서 통일에 대비하는 일이 우리의 과제다.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이 아닌 준비하는 사람에게 온다. 평화통일을 위한 굳건한 토대 마련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손선홍 주함부르크 총영사
#빌리 브란트#바르샤바 유대인 추모비#앙겔라 메르켈#다카우 수용소 기념관#평화통일#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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