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自手成家 창업가의 무덤에선 창조형 인재 안 나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6일 03시 00분


“역량 부재한 경영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깊은 상처와 아픔만을 드린 것 같습니다. 깊은 자괴와 책임감을 느낍니다.”

샐러리맨 신화를 일궈 냈던 박병엽 팬택 부회장(51)이 그제 채권단에 사의를 밝히면서 회사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팬택을 살리지 못하고 떠나는 최고경영자의 씁쓸한 소회와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호서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전세금 4000만 원을 빼내 1991년 팬택을 창업해 휴대전화 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박 부회장은 2006년 말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팬택 지분 34%를 내놓고 전문경영인으로 변신했다. 팬택은 각고의 노력으로 2011년 12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졸업했으나 치열한 휴대전화 시장의 높은 벽을 넘지는 못했다. 삼성전자와 애플이 맞붙는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력은 곧 자금력이다.

박 부회장처럼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창업한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과 강덕수 STX 회장도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자수성가(自手成家)한 기업 오너들의 잇단 퇴진은 창업가의 성공이 쉽지 않은 한국 경제의 현실을 드러낸다. 기업의 성과는 실적으로 평가받는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철칙이다.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사업을 확장하다 실패한 책임은 최고경영자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들의 퇴진이 우리 사회의 척박한 기업 환경과 무관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창업으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창조경제’ 또한 유능한 인재들이 대기업이나 공무원에 안주하기보다 창업을 통해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만들도록 하는 게 관건이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빌 게이츠 회장과 스티브 잡스 전 애플 회장,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회장은 미국이 낳은 벤처 거물들이다. 이들은 돈 없이 아이디어만으로 회사를 만들어 미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빈손’ 창업주들이 속속 ‘무덤’으로 들어가는 경제환경은 문제가 있다.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창조형 인재가 나올 수 없다. 창업가들의 잇따른 좌절로 젊은 청년들의 꿈이 시든다면 창조경제도 꽃피울 수 없을 것이다.
#박병엽#팬택#창업#윤석금#강덕수#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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