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c]호미스… 채널… 쿠치… 명품 패러디한 ‘페이크 패션’ 강풍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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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아의 스타일포스트

“한국의 고소득층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소비하며, 중산층은 이들을 ‘모방’하고, 저소득층은 아예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과소비 대열에 끼어든다.”

한 대기업 경제연구소가 몇 년 전 발표한 연구 결과다.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1899년 ‘유한계급론’에서 ‘과시적 소비’에 대해 설명했다.

일부 상류층의 소비 행위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이런 상류층을 모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상품이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이른바 ‘베블런 효과’가 나타난다. 이런 과시 소비는 상징적 소비로 대체되기도 한다. 명품의 브랜드 가치를 자신과 동일시하려는 심리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명품의 가치는 대개 희소성(scarcity)에서 비롯된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희소성만으로 명품의 가치를 따진다면 이미 명품으로 불릴 수 없는 명품 브랜드가 대부분이다. 길을 가다 3초, 5초마다 마주친다고 해서 붙여진 ‘3초 백’ ‘5초 백’이 명품의 희소성이 떨어진 대표적인 사례다.

패스트푸드 체인 브랜드인 ‘맥도널드’와 럭셔리를 섞은 말로, 명품을 맥도널드 햄버거처럼 누구나 소비할 수 있게 됐다는 뜻으로 쓰이는 ‘맥 럭셔리’도 비슷한 맥락이다. 따라서 그 흔한 명품 백이나 명품 브랜드로 자신을 과시하려 해도 그 과시를 진심으로 인정해주는 이가 없을 수도 있다.

이런 기류 때문일까. 최근 명품의 로고를 비틀어 명품의 허세를 비꼬는 ‘패러디 브랜드’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ASOS·SSUR·BLTEE 제공
‘호미스(Homies)’ ‘채널(Channel)’ ‘쿠치(Cucci)’. 누가 봐도 어떤 브랜드를 따라 한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명품 브랜드를 비틀었다.

명품 브랜드 패러디는 해외 뮤지션들이 먼저 시작했다. 패션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할렘가 출신 래퍼 에이셉 로키가 명품 브랜드인 ‘콤 데 가르송’을 속어로 바꿔 ‘콤 데 퍽다운’으로 패러디한 게 대표적이다.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배우이자 가수인 마일리 사이러스는 ‘에르메스’를 ‘호미스’로 변형한 티셔츠를 입어 눈길을 끌었다.

최근에는 국내 연예인들도 페이크 브랜드를 입은 모습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일부 아이돌이 콤 데 퍽다운의 스냅백(뒤에 크기를 조정할 수 있는 버튼이 달려 있는 모자)을 착용하면서 이 브랜드를 구매하려는 젊은층이 늘고 있다. 힙합 뮤지션 등 일부 스타가 사회 비판과 풍자를 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페이크 패션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페이크 패션은 말 그대로 오리지널(원본 또는 원제품)을 모방한 패션을 일컫는다. 의도된 모방이라는 점에서 명품을 단순히 흉내 내 카피한 ‘짝퉁’과는 구별된다.

페이크 패션은 제조와 유통도 합법적이다. 패러디 패션의 대표적인 제조사는 미국 브랜드인 ‘에스에스유아르(SSUR)’로 현재 국내 주요 온라인 쇼핑몰에도 입점해 있다.

페이크 패션은 소비자들이 점차 가치소비에 눈을 뜨는 경향과 무관치 않다. 무리하게 명품을 구매하기보다는 자신의 이미지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 제품을 선택하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페이크 패션은 이런 변화와 궤를 같이하는 듯하다. 단순히 장난스러운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 없는 명품 추종자들이나 물질 만능주의를 비꼬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페이크 패션은 소신까지 있어 보인다.

인터패션플래닝 트렌드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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