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 의약]수요에 따라 생산량 조절… ‘백신 주권’ 우리가 지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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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3.4명이 감염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 호흡기로 감염되며 치사율이 100%인 최악의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을 뒤덮는다. 혼란에 휩싸인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벌이고, 급기야 정부는 국가 재난사태를 발령한다. 정부는 임시방편으로 ‘도시 폐쇄’라는 초유의 결정을 내리는데….

이것은 영화 ‘감기’의 줄거리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이 없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결과가 벌어질 것이다. 특히 한국은 백신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 이런 상황에 극히 취약할 수밖에 없다. 2009년 신종플루가 발생했을 때에도 백신 품귀 현상이 빚어져 일선 의료진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SK케미칼은 ‘백신 주권’을 지키기 위해 자체적으로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2006년부터 백신 개발을 차세대 성장 사업 중 하나로 정하고 2008년에는 국내의 대표적 바이오벤처인 인투젠을 인수하는 등 백신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현재 SK케미칼에서 다루는 백신은 총 11가지. B형간염과 수두, DTP(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 소아마비, MMR(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 Td(파상풍·디프테리아) 같은 질병의 국가 필수 예방접종 백신부터 뇌수막염, 독감 백신 같은 기본 백신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폐렴, 자궁경부암, 로타바이러스 백신 등 글로벌 제약사와 협력 관계를 맺고 들여온 제품들도 있다. 최근에는 독감과 성인용 Td, DPT 백신을 국내 최초로 주사기 안에 약물이 미리 채워진 형태(프리필드 시린지)로 내놓기도 했다.

현재 SK케미칼은 백신 수요가 갑자기 치솟을 경우에 대비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세포 배양방식의 백신’을 개발하는 데에 역점을 두고 있다. 기존의 ‘유정란 백신 개발’ 방식은 계란에 바이러스를 집어넣어 배양하는 것으로 개발에 오랜 기간이 걸리고 대량 생산에 한계가 있었다. 유정란이 균이나 바이러스에 오염되면 안 되기 때문에 가격이 비쌀 뿐 아니라 충분한 양을 사전에 확보하기 힘들었으며, 유정란 준비에만 시간이 6개월이나 걸렸다.

이런 이유로 노바티스 등 글로벌 제약사들은 백신 생산과정을 세포 배양 방식으로 전환 중이다. SK케미칼도 포유류의 세포주(세포 배양을 통해 계속 분열하고 증식해 대를 이을 수 있는 배양 세포)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백신 개발에 나서고 있다. SK케미칼 관계자는 “세포 배양방식의 백신은 갑작스럽게 인플루엔자가 유행할 때도 탄력적으로 생산량을 늘릴 수 있고 개발 기간도 2∼3개월로 비교적 짧다”며 “균이 없는 환경에서 격리된 채 작업이 진행돼 불순물 발생 위험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SK케미칼은 올해 준공을 목표로 2010년부터 경북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안동경북바이오단지에 ‘세포 배양 방식의 인플루엔자백신 생산 설비’를 짓고 있다. 이 공장은 6만3000m²의 터에 지어지며, 연간 1억4000만 도즈(1회 접종량)의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SK케미칼은 또 세포 배양 방식을 활용한 백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신종 인플루엔자 범부처 사업단’과 함께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동물세포배양 기술을 이용한 세포배양 인플루엔자 백신의 임상시험 계획을 국내에서 처음 승인 받았다. 범부처 사업단은 신종 인플루엔자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이 분야의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범부처 협력 체계 구축을 추진하는 조직이다.

SK케미칼은 지난해 9월부터 임상에 착수해 올해 8월 식약처로부터 동물 세포 배양 기술을 이용한 인플루엔자 백신에 대한 3상 임상 계획을 승인 받았다. 임상을 이끌고 있는 김우주 범부처 사업단장(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은 “3상은 임상의 사실상 마지막 단계”라며 “3상을 통해 백신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면 인플루엔자 백신의 신속한 개발, 생산으로 백신 주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SK케미칼 측은 “국내 백신 사업은 중장기적인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해외 의존도가 높다는 한계를 보여 왔다”며 “백신 제품군의 다양화와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백신을 개발해 ‘백신 주권’을 수호하겠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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