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 의약]제약사도 정부도 글로벌을 꿈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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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를 넘어서야 살 길이 있다”
국내 제약사, 해외시장개척 나서

“아직 동네 구멍가게 수준이다.”

국내 제약업체들의 규모를 글로벌 제약사와 비교할 때마다 업계 관계자들이 자조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국내 제약 산업의 현 주소를 보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현재 ‘완제 의약품’을 제조하는 200여 제약사 가운데 생산액이 1000억 원 이상인 기업은 40곳 정도에 불과하다. 1조 원 이상의 규모를 가진 기업은 없다.

세계 시장을 공략하려는 목적으로 신약을 개발하려면 평균 15년 동안 1조 원을 투입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투자해도 성공 확률은 0.1%가 채 안 된다. 화이자 로슈 GSK 노바티스 등 글로벌 제약사들은 매년 수조 원을 신약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영세한 국내 제약사가 신약 개발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내수업종에 머물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제약사들도 ‘이대로는 어렵다’는 위기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지난해 정부의 보험약가 인하정책으로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을 했고 2011년 비준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글로벌 기업의 공세가 점점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약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R&D 투자를 늘리고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23일 의약품수출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제약사의 의약품 수출액은 23억6343만 달러(약 2조6000억 원)로 4년 사이에 두 배 정도로 늘었다. 앞으로의 수출 증가세는 더 가팔라 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제약사, 해외로, 해외로…

JW중외그룹은 최근 해외진출 성과를 발표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끌었다. 세계 최대 영양수액제 판매회사인 미국 박스터와 계약을 체결하고 자체 기술로 만든 영양수액제를 미국과 유럽 등에 수출하기로 한 것이다. 국내 제약사가 알약, 캡슐 형태가 아닌 주사제를 미국 등 의약 선진국에 대규모로 수출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JW중외그룹이 만든 영양수액제는 지질, 포도당, 아미노산 등 세 가지 성분을 비닐팩 하나에 함께 담은 제품으로 주사 직전 간단한 방법으로 섞을 수 있도록 고안했다. 이에 앞서 일본 스즈켄그룹 계열 SKK제약사와 순환기 분야 개량신약을 공동 개발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JW중외그룹 관계자는 “공동개발 제품을 일본에 수출할 경우 6년간 매출이 약 1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며 기대를 보였다.

국산 신약으로 ‘수출 1억 달러’를 넘어선 제품도 나왔다. 보령제약은 2011년 멕시코 제약사 스텐달과 국내 15번째 신약인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로 3000만 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에는 브라질 1위 제약사인 아쉐와 431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지난달 다시 스텐달과 ‘카나브 이뇨 복합제’로 26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하면서 보령제약은 중남미 진출의 대표주자가 됐다. 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은 지난해 해외 진출 전담조직을 만든 데 이어 올해 초 다국적 제약사인 얀센 출신의 최태홍 사장을 보령제약 사장에 영입하면서 해외시장 개척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셀트리온은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가 유럽의약품청(EMA) 판매 승인을 받으면서 항체 바이오의약품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항체 바이오의약품은 체내에서 병을 유발하는 원인을 지닌 특정 단백질에 항체처럼 작용해 해당 단백질만 무력화할 수 있는 의약품으로 일반적인 화학 의약품보다 부작용이 적다. 항체 바이오시밀러는 항체 바이오의약품의 복제약이다. 관절염 치료제인 램시마는 한국 기업이 보유한 첫 항체 바이오시밀러로 셀트리온은 2006년부터 2000억 원을 투자해 EMA의 허가를 받는 쾌거를 이뤄냈다. 램시마의 오리지널 의약품인 얀센 ‘레미케이드’가 지난해 매출 8조2000억 원을 올린 만큼 램시마의 유럽 시장 성공 가능성도 큰 상황이다.

한미약품은 7월 아모잘탄(고혈압), 에소메졸(역류성 식도염), 피도글(혈전) 등 개량 신약 3품목을 글로벌 유통회사인 DKSH를 통해 아시아 7개국에 진출시켰다. 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에 이르면 올해 말부터 10년간 수출하게 된 것이다. 한미약품 측은 10년간 1억30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최근 중국 제약사 바이펑을 인수한 대웅제약은 이달 몽골 제약기업과 간장약 ‘우루사’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계약을 체결했고, 동아ST는 5월 폴란드 제약사와 140만 달러 규모의 항암제 수출 계약을 맺으며 유럽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정부도 제약 펀드 조성 등 지원책 내놔

정부도 펀드를 조성해 국내 제약사의 해외 진출을 적극 응원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5일 제약기업의 신약 개발과 인수합병(M&A), 해외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1000억 원 규모의 ‘글로벌 제약산업 육성 펀드’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복지부가 200억 원을 투입했으며 민간에서는 한국정책금융공사(500억 원) KDB산업은행(100억 원) 한국증권금융(100억 원) 농협중앙회(30억 원) 등이 출자했다. 5월에 위탁운용사로 선정된 인터베스트는 70억 원을 출자했다. 신약 개발기간이 긴 산업의 특성을 반영해 투자·회수기간은 8년으로 잡았다. 복지부는 제약펀드를 통해 연내 1, 2개 제약사에 대한 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이에 앞서 7월에 정부는 ‘제1차 제약산업 육성·지원 5개년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2020년에 ‘세계 7대 제약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비전에 따른 첫 번째 종합 계획안이다. R&D 확대, 제약-금융의 결합, 우수전문인력 양성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제약업계는 정부의 지원책이 아직 미흡한 수준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정부가 제약 산업에 관심을 보인 데 대해 반기는 분위기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신약 개발에 조 단위의 투자가 필요한데 1000억 원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하지만 정부 지원책이 적극적 투자의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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