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이진석 기자의 Car in the Film]매끈한 몸매의 2인승 스포츠카, 그와 닮았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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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셰 ‘928’/ 잡스

추석 연휴에 애플이 선보인 새로운 운영체제인 ‘iOS7’을 ‘아이폰’에 설치하고 새로운 기능을 살펴보는 데 적잖은 시간을 썼습니다. 더욱 화려해진 디자인과 개선된 편의성이 나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철저히 간결함을 추구하던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1955∼2011)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더군요.

사망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잡스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달 개봉한 애슈튼 커처 주연의 ‘잡스’를 보면 말이죠. 혁신과 창조를 위해서라면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타협하지 않았던 잡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얼핏 찬양 일색으로 포장된 영화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막상 내용을 보니 잡스의 이기심과 잔혹함도 함께 나오더군요. 늘 회사의 장애인 주차장에 거리낌 없이 차를 갖다 댄 일화도 포함해서 말이죠.

잡스는 산업디자인의 구체적인 개념이 잡혀있지 않던 1980년대부터 제품 디자인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런 성향은 그가 생전 탔던 자동차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개인용 컴퓨터의 대중화를 이끈 ‘애플2’의 성공 뒤 막대한 부를 쌓게 된 잡스는 다양한 고급차를 번갈아 탔습니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그가 애플에서 쫓겨나 새 컴퓨터 회사인 ‘넥스트’를 세운 뒤 억만장자 투자자인 로스 페로가 찾아온다고 하자 애지중지하던 포르셰의 고급 스포츠카 ‘911’을 황급히 숨겼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페로가 자신의 포르셰를 보고 돈이 많다고 생각해 투자를 줄일까 걱정했던 거죠. 잡스는 또 포르셰 손목시계를 즐겨 착용했습니다. 1981년 매킨토시 컴퓨터를 개발할 때는 자신이 당시 소유했던 포르셰 ‘928’(사진)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네요.

잡스가 생애 마지막으로 탔던 차는 메르세데스벤츠 ‘SL55 AMG’입니다. 그는 이 차의 외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 신차를 산 뒤 6개월은 번호판을 달지 않아도 된다는 캘리포니아 주 규정을 이용해 6개월마다 새 벤츠를 뽑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잡스가 생전 탔던 차들의 공통점은 아름다운 디자인을 갖췄지만 뒷좌석이 없는 2인승의 고성능차로군요. 그의 미(美)와 기능에 대한 집착, 그리고 고독함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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