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속에 비친 도시, 이끼로 만든 공간산수… 우리 시대의 진짜 풍경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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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I미술관 ‘진경, 眞鏡’전

김민호 씨의 ‘CCTV-Seoul’. 도시 곳곳에 설치된 CCTV 이미지를 수집한 뒤 움직이는 풍경을 완성했다. OCI미술관 제공
서울 수송동 OCI미술관이 기획한 ‘진경, 眞鏡’ 전은 이 시대와 공감하는 현대 동양화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자리다. 한데 고전적 산수를 예상한 관객에게는 고개를 갸우뚱할 작품이 많다. 이끼로 만든 산수 설치 작품에 사진과 회화가 혼합된 풍경이 있는가 하면,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기록과 우리 시대의 욕망을 풍자한 표현이 뒤섞여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유근택 박병춘 정재호 김정욱 이영빈 등 중견부터 신진까지 12명의 작가는 모두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그들이 전개한 작업은 천차만별이다. 최정주 수석큐레이터는 “우리 시대 눈높이에 맞춘 동양화의 양상,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을 살펴보려 했다”며 “내 주위의 현실을 그대로 담아낸다는 조선시대 진경(眞景)의 개념을 기반으로, 거울에 비추듯 이 시대의 진짜 풍경을 다룬다는 의미로 ‘진경(眞鏡)’을 찾는 전시”라고 말했다.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으나 열매는 제각기란 점에서 동양화과 출신 작가들이 안고 있는 과제와 대안을 두루 살펴볼 기회다. 이들이 시도한 전통의 현대적 응용을 ‘동양화의 확장된 언어’로 수긍할지, 얼토당토하지 않다고 볼 것인지는 온전히 관객의 몫일 것이다. 10월 27일까지. 무료. 02-734-0440

○ 우리 시대의 공간

전통 산수의 정신과 조형성을 이끼를 활용해 입체공간으로 옮겨 온 임택 씨의 ‘점경와유’ 중 일부. 광활한 자연의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OCI미술관 제공
‘서사의 순간’ ‘움직이는 풍경’ ‘일상과 환영 사이’ 3개 테마로 구성된 전시에서 풍경 섹션이 돋보인다. 실내로 옮겨 온 풍경을 방에 누워 눈과 감각으로 유람하던 ‘와유(臥遊)’ 사상이 현대에 와서 얼마나 다채롭게 해석되는지 볼 수 있다.

먼저 임택 씨는 전북 진안에서 채취한 이끼를 바닥에 깔아 ‘점경와유(點景臥遊)’를 완성했다. 흰 솜으로 만든 구름과 어우러진 광활한 초록 풍경은 아늑한 정원 혹은 판타지 영화에 등장하는 숲처럼 상상력을 자극한다. 작업을 완성한 뒤 이끼에 물을 뿌리던 작가는 “김홍도와 정선의 산수를 공간 개념으로 재해석해 입체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호 김보민 씨의 그림은 얼핏 서양화의 영역에 있는 듯하지만 근경 중경 원경을 한 화면에 담는 고전 산수의 미학을 고갱이로 삼고 있다. 김민호 씨는 한 벽면을 320점의 조각 그림들로 채워 움직이는 도시의 표정을 포착했다. 관리와 감시 목적으로 설치한 CCTV 속 이미지가 작품의 소재다. 경찰청 홈페이지에서 실시간 도로교통 이미지를 수집한 작가는 이를 특정한 공간과 시간 속에 남겨진 도시인의 흔적으로 재구성했다. 김보민 씨는 파노라마식 시선으로 서울 풍경을 친근한 듯 낯설게 표현했다.

○ 우리 시대의 삶

이 시대 이야기와 삶의 심연을 진지하고 섬세하게 응시한 작품들도 주목된다. 유근택 씨는 동양화의 관념성을 오늘의 현실에 접목했고, 정재호 씨는 세월의 급류에 밀려 퇴출당한 사물과 건축물로 사라져 가는 것의 쓸쓸함을 부각했다. 부정적인 기억을 다층적 이야기로 엮은 이진주 씨, 멍과 상처를 통해 성장기에 겪은 아픔을 드러낸 양유연 씨는 개인의 고통과 슬픔을 치유하고 정화하는 과정으로 심리적 풍경을 완성했다.

유머와 위트로 현대인의 내면을 비춘 작품은 재미를 선사한다. 팝문화를 전통적 조형으로 소화하는 손동현 씨는 할리우드 영화 속 로봇 캐릭터를 그려서 6m 길이의 화첩을 선보였다. 서은애 씨는 이상세계를 꿈꾸는 인간 욕망을 고전 산수의 미학에 투영해 전통과 현대,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허문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점경와유#진경#C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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