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폰 156만대 수출효과… 의료한류 ‘중동 붐’ 열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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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료IT 사우디에 통째 ‘이식’

《 한국 대표단이 22일 찾은 사우디아라비아 킹파흐드왕립병원(KFMC)의 심장중환자실 병동. 의사가 연필로 진료기록을 작성했다. 환자의 심전도 검사 그래프는 일일이 출력해 서류로 보관했다. 이렇게 해서 쌓인 의료기록이 진료실 한쪽을 차지했다. 한국의 종합병원에서는 대부분 컴퓨터로 처리한다. KFMC가 사우디 빅3 병원이고 왕실이 최첨단 병원으로 전략 육성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곳의 병원정보시스템(HIS)이 상대적으로 낙후됐음을 보여준다. 》

사우디 수도 리야드 중심부의 알가디어 보건소도 사정은 마찬가지. 진료기록 처방 가족관계 등 기본적인 환자 정보를 전산 시스템에 담았지만 초보적 수준이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이집트 출신 의사 라푸트 살라 씨는 “리야드의 보건소 100곳 중 25% 정도만 이런 시스템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 의료 환경, 수작업에서 IT로

사우디는 세계적 수준의 의료기기를 잘 갖춘 편에 속한다. 넉넉한 재정 덕분이다. 하지만 의료 정보기술(IT) 환경은 한국의 1990년대와 비슷하다. 수도 리야드를 벗어나면 의료 인프라가 더 좋지 않아 500병상 이하 병원 대부분이 종이 형태로 자료를 관리한다.

이런 풍경이 180도 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HIS가 사우디 각지에 똑같이 설치되는 대형 프로젝트 덕분이다. 1단계로 내년부터 10년 동안 사우디 3개 권역 중 1개 권역의 보건소 3000곳, 공공병원 80곳에 한국 의료 IT가 이식된다.

사우디 정부는 국가 단위의 보건의료 정보화사업 가운데 이미 발주한 사업을 제외하고 진료정보교류(HIE) 혈액관리(Blood Bank) 원격진료(Telemedicine) 현장진료(POC) 시스템 구축을 한국에 맡길 예정이다. 이를 위해 두 나라는 공동 투자한 합작법인(조인트 벤처)을 사우디에 세워 운영하기로 했다. 보건소 및 공공병원 HIS 구축사업은 삼성SDS, SK텔레콤-분당 서울대병원 컨소시엄, 현대정보기술이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사우디 대표단은 10월 말 한국을 방문해 이 사업자들을 평가한다.

사우디는 한국의 의료 IT를 활용해 보건소 또는 병원에서 나오는 모든 기록을 국가가 통합 관리하고 의료기관 간에 공유하도록 만들 계획이다. 또 질병통계를 포함한 건강 관련 정보를 좀 더 체계적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한국의 경우 진료기록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관리하지만 의료기관 사이의 공유는 제한된다. 다만 분당 서울대병원이 경기 성남지역 의원급 병원의 진료기록을 통합 관리하는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정호원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과장은 “사우디는 한국처럼 전 국민 주민번호 체계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시스템을 이식받는 데 다른 국가보다 유리한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 공산품 수출 능가하는 의료 수출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왼쪽)과 압둘라 알라비아 사우디아라비아 보건부 장관이 한-사우디 보건의료협력 합의 의사록에 22일 서명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왼쪽)과 압둘라 알라비아 사우디아라비아 보건부 장관이 한-사우디 보건의료협력 합의 의사록에 22일 서명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사우디와의 이번 합의로 한국에는 상당한 경제 효과가 기대된다. 한국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의료 IT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10년 동안 약 9623억 원의 부가가치가 유발될 것으로 추산된다. 쏘나타 승용차 3만5000대 또는 갤럭시 스마트폰 156만 대를 수출할 때와 비슷하다. 또 외국인 관광객 56만 명을 유치하는 수준과 비슷하다.

국내로 들어오는 순수익 역시 다른 업종보다 많다. 원자력발전소 사업을 수주하면 전체 부가가치의 20∼25%만 국내로 유입되지만 의료 IT는 80% 정도가 국내 이익이 된다고 산업계는 분석한다. 일자리는 IT 연구개발, 시공, 외국어를 중심으로 1만 개 이상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수 프로그램도 뜻깊은 사업이다. 한국은 1955년부터 1961년까지 한국 의료인 226명을 미국에 보냈다. 선진 의료기술을 배운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통해 의료기반을 닦았다. 의술을 원조받는 빈곤국이 반세기 만에 의료기술을 전수하는 선진국으로 발전했다.

유료 연수 프로그램은 황금 알을 낳는 사업으로 의료계가 인식하는 분야. 한국을 찾는 사우디 의사는 수업료 3000달러를 포함해 체재비로 6000달러 이상을 매달 지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철 세브란스병원장은 “한국에서 연수받은 의사는 본국으로 돌아가도 한국 의약품이나 기기에 계속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의료 IT 수출 프로젝트가 차질 없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과제가 적지 않다. 먼저 법적 구속력이 생기는 시행계약을 체결할 때까지의 2개월 동안 돌발 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우디 보건부 실무진은 양국 장관 면담을 앞두고 시행협약 체결 2개월 연기를 주장해 한국 대표단을 곤혹스럽게 했다. 상대의 진을 빼려는 중동 특유의 협상전략이었다. 방한 경험이 없는 사우디 실무진을 초청해 신뢰를 쌓는 등 대화 채널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 IT업체의 해외사업 경험이 부족한 점도 걸림돌이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당장 사우디에 상당한 규모의 인력을 파견해야 한다. 기업이 많은 준비를 하지 않으면 차질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의료기관 해외 진출의 컨트롤타워 역시 강화해야 한다. 복지부는 최근 의료수출지원과를 새로 만들면서 과장급 1명, 사무관 3명, 주무관 3명을 배치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 정도 인력은 사실상 ‘언 발에 오줌 누기’밖에 안 된다. 해외 진출 상황을 챙기기는커녕 국내 규제를 다루는 데도 벅찰 것이다”고 말했다.

리야드=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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