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타자 출신이 사령탑을?… 편견을 뿌리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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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최다 수상 LG 김기태 감독의 성공시대
“수비작전 경험-이해 부족” 통념 깨
감독이 전권 휘두르던 시대 가고, 분야별 전문코치 협업 흐름 반영

“지명타자 출신은 역시 안 돼.”

프로야구 LG가 지난해도 ‘내팀내(성적이 내려갈 팀은 결국 내려간다)’ 징크스를 깨지 못하자 팬들은 김기태 감독(43·사진)의 ‘출신성분’까지 트집 잡았다. 하지만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한 올해는 이 얘기가 쑥 들어갔다.

김 감독은 2011년 프로야구 30주년 기념 ‘레전드 올스타’에 지명타자로 뽑혔다. 김 감독은 프로야구 역사상 지명타자로 올스타에 가장 많이(7번) 뽑힌 선수였고,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 횟수 역시 양준혁(현 SBS-ESPN 해설위원) 홍성흔(두산)과 함께 4번으로 가장 많다.

야수가 나이가 들어 순발력이 떨어지면 지명타자로 포지션을 바꾸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프로 초년병 시절부터 붙박이 지명타자에 가까웠다. 그가 데뷔한 신생팀 쌍방울 타선은 ‘김기태와 여덟 난쟁이’로 불릴 정도로 약했기 때문이다.

타격만 하는 지명타자는 수비 전술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수비보다 타격이 중요한 외야수도 그렇다. 김정준 SBS-EPSN 해설위원은 “투수도 던지기만 하지만 경기의 70%를 좌우하는 데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제일 잘하고 잘 아는 부류가 많다”며 “포수는 말할 것도 없고 내야수도 팀 전술에 깊이 관여하지만 외야수나 지명타자는 그렇지 않아 감독 자리를 맡기에는 미흡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그렇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펴낸 ‘2013 한국프로야구 연감’에 따르면 외야수 출신 감독(대행)의 통산 승률은 0.454밖에 되지 않는다. 현역 시절 주요 포지션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로 구분했을 때 가장 낮은 성적이다.

외야수가 이 정도니 지명타자 출신이 프로야구 감독 하마평에 오르는 건 극히 이례적이다. 김용희(내야수) 유승안(포수) 전 감독도 지명타자로 골든글러브를 탄 적이 있지만 전문 지명타자 출신 프로 사령탑은 김 감독이 처음이다.

그런 점에서 김 감독의 성공기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감독이 모든 걸 일일이 점검하고 지시하는 ‘헤드코치’ 체제에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전문성을 가진 코치들에게 전권을 부여하고, 감독은 팀 전체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매니저’ 형태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탄인 것이다.

김 감독은 팀이 승리를 거두면 손바닥이 아니라 손가락을 맞부딪쳐 선수들과 기쁨을 나눈다. 호언장담은 자기 혼자 손을 걸면 되지만 약속은 서로 손가락을 걸어야 가능하다. 김 감독이 ‘함께 강팀을 만들어 가자’며 진심을 걸었던 약속이 점점 더 큰 결실을 향해 가고 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김기태#지명타자#골든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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