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주성하]이산가족 상봉이 북한은 반갑지 않은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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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국제부 기자
주성하 국제부 기자
북한 당국이 볼 때 이산가족을 다른 말로 풀이하면 적대계층이다. 출신성분을 중시하는 북한에서 수백 만 이산가족 중 99% 이상은 적대계급으로 분류돼 6·25전쟁 이후 60년 넘게 신음했다.

북한의 이산가족은 크게 6·25전쟁 전후로 남쪽으로 내려온 ‘월남자’와 의용군 등으로 북한에 올라간 ‘월북자’ 가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월남자 가족이 어떻게 박해받았는지는 남쪽에 많이 알려졌다. 가족 중 월남자가 있으면 간부 승진은 물론이고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 이들은 벗을 수 없는 신분의 굴레를 쓴 채 농촌과 광산 등 가장 어렵고 힘든 곳에서 평생 감시 속에 살아야 했다.

월북자 중에는 인민군으로 참전해 싸웠거나 또는 공산주의를 동경해 북한으로 간 사례가 많다. 북한에 공을 세운 사람이 적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정치와 거리가 먼 과학이나 예술 분야에 종사한 소수만이 계속 이용가치를 인정받았을 뿐 다른 사람들의 신세는 월남자와 큰 차이가 없다. 인민군으로 참전한 남쪽 출신 역시 대개 탄광이나 광산에서 평생을 보냈다. 김일성은 애당초 남쪽 출신들을 믿지 않았다. 중앙당이나 보위부 같은 북한의 핵심 권부엔 이산가족이 없다.

초기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는 교수나 예술인 같은 북한이 내세울 만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상봉 횟수가 점차 늘어날수록 고생으로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전 대상자들을 평양으로 불러서 잘 먹여 살도 찌우고 ‘때깔’도 바꾸려 애쓴다. 하지만 평생의 고초가 몇 달 잘 먹는다고 바뀔 수는 없다.

당국은 또 매일 정치교육도 하고, 남쪽 가족에게 할 예비 답변까지 준비시킨다. 수십 년을 사상교육으로 세뇌하고도 못 믿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남쪽 가족을 만난 사람들은 “장군님의 은덕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이산가족 상봉은 북한에 전혀 달가운 일이 아니다. 호텔에서 잘 먹이고 남쪽 가족에게 줄 선물까지 챙겨주는 것은 적대계급에 어울리지 않는 대접이다. 더구나 남쪽 가족을 만나 돈과 선물을 받으면 그 자손들까지 남쪽을 선망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입장에선 이산가족 상봉 규모가 커질수록 적대계층을 더 늘리는 일이다. 그러니 아무리 남쪽에서 대규모 이산가족 상봉을 호소해봐야 먹혀들 리 없다.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은 인륜의 문제가 아닌 대남 전술적 차원에서 일부 적대계층에게 어쩔 수 없이 베푸는 호의일 따름이다.

이산의 한을 품고 눈을 감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우리에겐 가는 세월을 멈춰놓고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심정은 세월의 태엽을 더 빨리 돌리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산가족이 줄어든다는 것은 남쪽을 동경하는 잠재적 체제 위험분자들이 그만큼 빨리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산가족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어야 할 적대계급일 뿐이다.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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