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성적 떨어진 우리 아이… 혹시 뇌에 문제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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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클리닉’ 찾아 동분서주하는 학부모들

서울의 한 아동청소년심리센터에서 학생들이 ‘뉴로피드백훈련’을 하고 있다. 이 훈련은 자신의 뇌파의 활성도를 조절해 학습장애를 치료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의 한 아동청소년심리센터에서 학생들이 ‘뉴로피드백훈련’을 하고 있다. 이 훈련은 자신의 뇌파의 활성도를 조절해 학습장애를 치료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 강남의 한 학습클리닉 전문 소아정신건강의학과의원. 초등학교 4학년 딸을 둔 학부모 D 씨(42·여·서울 강남구)가 딸과 함께 이곳을 최근 찾았다. 딸의 난독증 치료를 위한 ‘뉴로피드백훈련’(뇌의 상태를 조절해 집중력과 사고력을 증진시키는 훈련) 등을 받기 위해 6주 전부터 주 3회씩 클리닉을 찾는다. D 씨가 딸의 치료에 쓴 비용은 첫 검사비용 40만 원과 6주간 치료비용 70만 원 등 총 110만 원.

그가 클리닉을 찾은 결정적 계기는 의학적 진단 때문이 아니었다. 평소 딸 아이가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 모습을 걱정하던 차에 “난독증을 앓고 있을 수 있으니 정신건강의학과 진단을 받아보라”는 주변 학부모의 권유에 귀가 솔깃했던 것.

장 씨는 “딸이 말하기와 글쓰기에 다소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평소 영어학원도 꾸준히 다니는 것을 보면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을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게 되었고 6주째 치료를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병원에서 잠자고 등교?… ‘클리닉’ 전성시대

최근 자녀의 학습이나 인성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클리닉’을 이용하는 학부모가 적지 않다.

과거 학부모들은 자녀가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거나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이면 학원 수업이나 친구관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살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자녀의 학습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인지능력이나 감각활동, 심리상태 등을 의학적 관점에서 진단하고 치료하는 클리닉에 주목하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

특히 서울 강남지역처럼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선 ‘○○학습클리닉’이라는 간판을 내건 병의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 클리닉은 보통 초기 진단·검사 비용이 10만∼30만 원 선. 치료와 각종 훈련에는 회당 5만∼10만 원씩 최대 100회 이상의 비용이 들기도 한다.

학습클리닉전문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이 입주한 강남구의 한 상가건물에서 약국을 운영 중인 A 씨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관련 약물 처방전을 받아들고 오는 학부모가 평일 오후는 10명 이상, 토요일에는 지방에서 클리닉을 찾아온 학부모들까지 더해져 50명 이상에 이른다”고 전했다.

학부모들이 찾는 의원은 신경정신건강의학과의원 외에도 소아청소년과의원, 한의원 등 종류가 다양하다. 최근에는 등교 전에 자녀를 수면클리닉전문의원에 보내 아침 시간의 두뇌 활성화를 도와준다는 클리닉을 받게 하거나 아예 의원에서 자면서 진단을 받은 뒤 곧바로 등교하게 하는 학부모도 상당수다.

학습클리닉 ‘러시’… 자녀보다 학부모 불안이 원인?

학부모들은 자녀의 성적이 부진한 원인을 찾다 답답함을 느끼던 중 근본적인 원인을 찾겠다며 각종 클리닉을 찾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서울 강남지역 등 자녀를 국제중이나 특목고에 진학시키려는 학부모가 많은 지역에선 “자녀의 학업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특출한 재능을 보이지 못하면 조바심을 느껴 자녀가 가진 문제를 실제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학부모들은 입을 모은다.

클리닉 외에도 주의집중력을 개선하거나 두뇌활동 자극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의약품이나 한약을 구매하는 학부모도 있다. 또 특정 색의 파장을 걸러주는 렌즈로 뇌에 들어가는 ‘시·지각 정보’의 양을 조절함으로써 학습에 도움을 준다고 홍보하는 ‘난독증 치료 안경’을 최대 200만 원을 주고 구입하는 학부모도 있을 정도.

하지만 이 같은 클리닉 프로그램을 경험한 학부모 중 일부는 “오히려 자녀에게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나 상처를 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부모의 불안이나 걱정이 지나쳐 자녀의 학습능력이나 성향에서 나타나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무조건 의학적 진단과 처방에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중3 아들을 둔 학부모 K 씨(43·여·경기 용인시)는 아들 B 군(15)의 성적이 1학년 이후 중위권에서 하위권으로 계속 떨어져 고민하던 중 지난해 아들이 학교 수업시간에 집중을 못하고 교실을 소란스럽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학교 담임교사에게서 전해 들었다. K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간 한 아동청소년심리상담소에서 ‘ADHD를 의심해 봐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한 회에 5만 원 이상이 드는 ‘감각통합훈련’ 등 두뇌훈련 프로그램 진료를 받았다.

K 씨는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치료 효과가 금방 보이지 않아 5회 만에 치료를 중단했다”면서 “이전보다는 산만한 정도가 완화된 것 같기도 했지만 치료보다는 학습의지를 찾아주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고 판단해 아들이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주는 일에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고교생 딸의 수능을 앞두고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자녀를 두뇌클리닉에 보냈다는 한 학부모(서울 강남구)는 “영상과 음성을 활용한 치료로 정서 안정에 도움을 준다는 클리닉에 딸을 보냈다”면서 “치료 과정에서 나오는 영상을 딸이 20분 정도 보다가 어지러움을 호소해 클리닉을 중단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학습이 부진한 학생을 다수 상담해온 신규진 서울 경성고 진로상담부장교사는 “학습부진으로 의학적 치료를 받는 학생 중 일부는 ‘나는 ADHD 약을 먹는 환자’라고 밝히며 수업시간에 불량한 태도를 계속 보이기도 한다”면서 “학습능력이 개선되려면 심리적 안정이 중요한데 부모가 자녀를 사실상 ‘환자’로 취급하면서 치료를 강제할 경우 자녀가 큰 스트레스를 받아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강훈 기자 ygh8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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