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00만 원 벌면 44만 원 숨기는 고소득 자영업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3일 03시 00분


돈 잘 버는 상당수 자영업자의 탈세가 심각한 수준이다. 국세청이 2005∼2012년 8년간 실시한 고소득 개인사업자 4396명에 대한 기획 세무조사 자료에 따르면 이들의 소득 적출률은 평균 44%로 집계됐다. 세무조사를 통해 적발한 탈루액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소득 적출률이라고 한다. 그 수치가 44%라는 것은 100만 원을 벌면 44만 원은 국세청에 신고를 하지 않고 숨겼다는 뜻이다.

세무조사 대상이 된 자영업자 가운데 특히 고급 음식점과 골프연습장 등 현금 수입 업종의 탈세가 심했다. 이들의 탈루율은 57%로 벌어들인 수입의 절반 이상을 신고하지 않았다. 의사 변호사 세무사 등 전문직종은 32.6%, 현금 수입 직종과 전문직을 제외한 기타 서비스업종 자영업자는 46.2%의 소득을 숨겼다.

봉급생활자들은 월급을 받을 때마다 원천징수 형식으로 소득세를 낸다. 이들의 세원은 매우 투명하다고 해서 ‘유리지갑’으로 불린다. 봉급생활자들로서는 소득의 절반이나 되는 수입을 신고하지 않고 빼돌리는 일부 고소득 자영업자와의 징세 형평성에 반발할 수밖에 없다. 세금을 제대로 걷기 위해서는 ‘탈세 안 하는 나만 바보’라는 피해의식을 줄일 필요가 있다.

미국 독립과 건국에 공이 컸던 벤저민 프랭클린은 “죽음과 세금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명언(名言)을 남겼다. 그러나 이번에 드러난 고소득자의 탈세 행태를 보면 우리 현실에서는 이 말이 무색하다. 정부는 정확한 세무조사 대상자 선별과 체계적인 과세에 도움을 주는 탈세 규모 측정모델(택스 갭)을 서둘러 개발해야 한다. 고소득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개인 사업자의 세무조사 비율을 늘릴 필요도 있다.

소득을 실제보다 줄여 신고하는 탈세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함께 5억 원 이상의 세금을 1년 이상 체납하는 고액 체납자에 대한 징수도 강화해야 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국세 고액 체납자 명단 공개 제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기존의 관보(官報)와 인터넷 공개 이외에 주요 일간지와 공항, 항만에도 명단을 공개할 것을 제안했다. 사적인 권리를 지나치게 침범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지만 세금을 낼 수 있는데도 장기간 세금을 체납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소득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세금이 있다는 원칙을 예외 없이 적용하는 것이 세정(稅政)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자영업자#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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