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영]자연에 도전하는 불여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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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저 불여시 같은 ×.” TV 드라마에 푹 빠진 어머니에게 악녀 역할을 맡은 여배우는 여우(女優)가 아니라 여우다. 동서고금 여우는 영악하고 교활한 동물로 통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유독 ‘팜파탈’의 이미지가 강하다.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구미호가 예쁜 여인으로 변신해 인간의 간을 빼먹는다는 설정은 삼척동자도 안다. 백제에선 의자왕 때 여우가 궁전에 나타나자 나라 망할 징조라고까지 했다.

▷여우 입장에선 억울할 법하다. 눈매가 날카롭고 몸놀림이 빠르며 좀 똑똑한 것뿐인데. 1908년 안국선이 발표한 신소설 ‘금수회의록’에는 오히려 인간을 꼬집는 여우가 등장한다. “…외국의 세력을 빌려 의뢰하여 몸을 보전하고 벼슬을 얻어 하려하며, 타국 사람을 부동(符同)하여 제 나라를 망하고 제 동포를 압박하니, 그것이 우리 여우보다 나은 일이오, 결단코 우리 여우만 못한 물건들이라 하옵네다.”(푸른생각·2013년)

▷토종여우를 보통 ‘불여우’라고 부르는 건 이유가 있다. 온몸의 털이 짙은 갈색이나 붉은색을 띠기 때문. 머리와 몸통은 60∼90cm, 꼬리는 34∼60cm, 어깨 높이는 30∼40cm 정도 된다.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존재 여부가 아리송하다. 6·25전쟁 이후 쥐약(프라톨)을 많이 뿌리면서 주된 먹이인 쥐가 거의 사라졌고, 쥐약을 먹고 죽은 쥐를 여우가 먹어 죽는 경우도 많았다. 1989년 야생동물조사 때부터 자취를 감췄고, 2004년 강원 양구군에서 사체가 발견된 게 유일하다.

▷야생에서 사라진 토종여우를 복원하기 위해 27일경 토종여우 6마리를 경북 영주시 소백산국립공원에 방사한다고 한다. 두 번째 도전이다. 지난해 10월 31일 암수 한 쌍을 방사했지만 암컷은 6일 만에 폐사한 채 발견됐고, 수컷도 한 달 뒤 덫에 걸리는 바람에 왼쪽 다리를 절단했다. 이번엔 1년 가까이 자연 적응훈련을 시켰다고 하니 기대해 봐도 될까. 혹시 산에서 여우를 만나더라도 놀라지 말고 수십 년 만의 귀환을 환영해 주시길.

김재영 사회부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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