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원 벌면 56만원만 신고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국세청, 고소득 자영업자 4396명 8년간 기획조사 했더니…
식당-골프연습장 등 현금수입 업종, 탈루액 비율 57% 최고… 탈세 심각

서울에서 모텔과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A 씨는 유독 모텔의 한 객실에만 직원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비밀 객실’로 불린 이곳의 정체는 최근 국세청 직원들이 들이닥치고서야 밝혀졌다. 일일 매출액이 적힌 서류, 숙박 고객 명단 등이 가득했던 것. A 씨는 비밀 객실에 모텔의 매출장부를 꽁꽁 숨겨 놓고 국세청에 수입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아 현금 3억 원을 탈루했다. 그는 나이트클럽에서 벌어들인 49억 원에 대해서도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B 씨에게도 비밀 사무실과 비밀 전산실이 있었다. 그는 고객에게 “현금으로 결제하면 수술비의 15%를 깎아주겠다”고 설득해 주로 현금을 받았다. 현금영수증을 발행하지도 않았고 매출 장부는 병원 근처의 사무실에 숨겼다. 또 다른 건물에 마련한 전산실에서는 매출 전산자료를 조작해 국세청에 신고할 소득을 낮췄다. B 씨가 이렇게 세금 신고를 하지 않은 소득금액은 195억 원에 달했다.

A 씨와 B 씨처럼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보통 100만 원을 벌면 44만 원은 세무서에 신고하지 않고 숨긴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새누리당 김태호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8년간(2005∼2012년) 고소득 자영업자 기획 세무조사 현황’에 따르면 고소득 자영업자가 국세청에 세금 신고를 하지 않고 빼돌린 소득이 전체 소득의 4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이 자체 분석과 제보 등을 통해 탈루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지난 8년간 조사한 고소득 자영업자는 4396명이다. 이 가운데 의사, 변호사, 세무사 등 ‘전문직종’이 1580명으로 가장 많았다. 도·소매업, 서비스업 등 ‘기타 업종’은 1538명, 음식업, 골프연습장 등 주로 현금으로 많이 결제하는 ‘현금 수입 업종’이 1278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전체 소득 가운데 탈루액의 비율은 현금 수입 업종(57%), 기타 업종(46.2%), 전문직종(32.6%)의 순으로 높았다. 애초에 탈루 혐의가 전문직종에서 많이 발견될 것으로 예상해 가장 많은 인원을 조사했지만 정작 현금 수입 업종 개인사업자의 탈세가 심각했다.

소득세를 신고해야 하는 인원 가운데 실제 세무조사를 받은 개인사업자의 비율은 지난 8년간 0.1% 안팎에 머물렀다. 김 의원은 “세무조사를 받는 개인사업자 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라며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고소득 개인사업자에 대한 세무조사 비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국세청#고소득 자영업자#탈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