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품은 돌집’은 히말라야땅 수천년 지혜의 산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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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라디오방송국 설계 김인철 아르키움 대표

히말라야 산자락에 지어진 네팔 좀솜의 라디오방송국 ‘바람 품은 돌집’. 유리와 철탑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지에서 나는 재료와 현지 시공 기술을 활용했다. 설계자인 건축가 김인철 아르키움 대표(오른쪽 작은 사진)는 “좋은 재료나 좋은 기술을 써야 명작이 되는 건 아니다”라며 건축의 지역성을 강조했다. 사진작가 전명진 씨 제공
히말라야 산자락에 지어진 네팔 좀솜의 라디오방송국 ‘바람 품은 돌집’. 유리와 철탑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지에서 나는 재료와 현지 시공 기술을 활용했다. 설계자인 건축가 김인철 아르키움 대표(오른쪽 작은 사진)는 “좋은 재료나 좋은 기술을 써야 명작이 되는 건 아니다”라며 건축의 지역성을 강조했다. 사진작가 전명진 씨 제공
《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서북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작은 마을 좀솜. 안나푸르나의 트레킹 거점으로 개발된 이곳에 다음 달 초 FM라디오방송국이 개국한다. 설계자는 김인철 아르키움 대표(66·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 김옥길기념관, 강남 교보타워교차로의 빌딩 어반 하이브로 유명한 원로 건축가다. 해발 2700m의 오지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송국’을 재능기부로 설계해 달라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MBC의 요청에 그는 현지의 돌집을 닮은 방송국 ‘바람 품은 돌집’을 지어냈다. 》

“좀솜은 바람과 돌의 마을입니다. 아침에 잠깐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최대 시속 80km의 바람이 부는 곳이죠. 현지인들은 창을 내지 않은 단단한 돌집을 지어 바람과 추위를 막습니다. 저는 바람을 막기보다 품는 집을 생각했습니다. 제주 돌집처럼 돌을 성글게 쌓아 바람을 약화시켜 지나가게 하는 거죠.”

대지 면적 1500m²에 747.81m² 규모로 들어선 단층짜리 방송국은 돌벽이 바람을 품어 약화시키고 안에서는 유리벽이 빛을 받아낸다. 이 덕분에 현지의 전통가옥과 달리 실내가 어둡지 않다.

“해외에서 건물을 지을 땐 현지 재료와 현지 시공자가 쓸 수 있는 기술만을 이용합니다. 현지 풍토에 맞게 수천 년간 축적해온 지혜를 존중하면서 현대건축 기술을 가미해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내는 거죠. 기술적인 지식은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넘어서지 못해요.”

이 방송국 규모의 돌집을 지을 수 있었던 것도 지역성을 존중하는 원칙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좀솜엔 산에서 흘러내린 편마암이 흔하고, 돌 다루는 기술이 뛰어난 인력을 싼값에 쓸 수 있다. 캄보디아 바탐방에 원불교 교당(2011년)을 지을 땐 속이 비어있어 가벼운 현지 벽돌을 이용했다. 지진과 태풍의 피해는 없지만 지반이 약한 현지에서 건축은 튼튼하기보다 가벼워야 했던 것이다.

라디오방송국 ‘바람 품은 돌집’의 공개홀. 의자는 현지에서 조달한 통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다. 돌을 타고 들어오는 빛이 인상적이다. 사진작가 전명진 씨 제공
라디오방송국 ‘바람 품은 돌집’의 공개홀. 의자는 현지에서 조달한 통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다. 돌을 타고 들어오는 빛이 인상적이다. 사진작가 전명진 씨 제공
히말라야 산자락에 돌집을 짓는 일은 쉽지 않았다. 주 1회 취항하는 대한항공을 타고 카트만두에 도착한 뒤 30분간 국내선을 타고 포카라에 간다. 좀솜 비행장까지는 바람이 불기 전인 오전 10시 이전에 뜨는 20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25분간 계곡 위를 아슬아슬하게 날아야 한다.

김 대표는 지난해 6월 현장답사와 8월 착공부터 올 7월 준공 때까지 좀솜을 6회 왕복했다. 한번은 비행기를 못타고 15시간 동안 걸어 내려온 적도 있다. “해발 2700m에서 800m까지 걸어 내려오는 동안 식생과 풍경과 건축이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더없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한 번 더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김 대표는 건축의 지평을 동남아시아로 넓혀가고 있다. 2007년 인도 북부 히말라야의 라다크에 암자를 지은 것이 해외 프로젝트 1호다. 지금은 인도 뉴델리에 원불교 교당과 복지시설을, 캄포디아의 세계적인 유적인 앙코르와트 앞엔 대형 복합문화시설을 짓고 있다.

“건축이란 땅의 조건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는 것을 다른 땅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네팔#라디오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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