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더 기다릴 힘도 없는데… 가슴이 무너집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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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이산상봉 돌연 연기]
■ 고령의 이산가족들 망연자실

북한이 25일 예정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연기하겠다고 전격 발표한 21일 상봉 대상자인 허경옥 씨(85)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자택에서 북한의 동생에게 전해주려고 했던 물건들을 꺼내 보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북한이 25일 예정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연기하겠다고 전격 발표한 21일 상봉 대상자인 허경옥 씨(85)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자택에서 북한의 동생에게 전해주려고 했던 물건들을 꺼내 보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여기 있어도 죽고, 피란 가다가 폭격을 맞아도 죽는다면 일단 떠납시다.”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남편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작은 나룻배에 함께 몸을 실었다. 벼락같이 닥쳐온 불행 속에서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미처 연락도 못하고 오른 6·25전쟁 피란길. 한밤중 함경도 원산의 조그만 항구에서 배에 몸을 싣자 자꾸 눈물이 나왔다. 고개를 들어 고향 쪽을 마지막으로 봤다. ‘63년 이별’의 시작이었다.

○ 가족 모두 북에 두고 남편과 함께 남한으로

함경도 영흥이 고향인 문정아 씨(86·여)는 6남매(2남 4녀) 중 맏이였다. 집안은 넉넉지 않았지만 부모님과 6남매가 북적거리는 집에는 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문 씨는 스무 살 때 항구도시 원산으로 옮겨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1950년 당시 김일성대학에 다니던 남편을 만났다. 꽤 잘사는 지역 유지의 아들이었다. 첫눈에 반한 남편은 죽어라고 문 씨를 쫓아다녔다. 남편의 구애 끝에 둘은 약혼을 했다. 결혼은 남편이 대학 졸업을 한 뒤에 하기로 약속했다. 문 씨는 결혼하면 부모님도 모시고 동생들 뒷바라지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그때 6·25전쟁이 터진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남한으로 피란 온 둘은 일가친척도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정착해 나갔다. 남편의 친척들은 같이 배를 타고 피란 오다 그만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모두 사망했다. 문 씨는 첫아이를 낳을 때 친정어머니가 산후조리를 돕는 주변 여성들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1960년대에 셋째 아이를 낳고 나서야 겨우 결혼식을 올린 문 씨는 딸 다섯과 아들 하나를 낳아 대가족을 꾸리며 북한에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평생 북에 두고 온 부모님을 그리워하던 남편은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그 뒤 문 씨는 남편과 지내던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서 경기 파주시로 이사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은 문 씨에겐 다시없을 평생의 기회였다. 63년 동안 생사도 모르던 부모님과 동생들의 소식을 이산가족 상봉단에 합류하면서 처음 들었다. 여동생 2명이 살아있다는 얘기를 듣고 하늘에 감사했지만 나머지 3명의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는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렸다.

○ 63년 동안 기다렸는데

“내가 북에 살았을 때는 어찌나 추웠는지. 마스크를 써도 코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어. 요즘은 추위가 많이 사그라졌다고 해도 겨울 되면 동생들이 또 추울 거야. 두툼한 내복 몇 벌 사오고 겨울 코트도 한 벌 준비해야겠다. 얘야, 지금 주면 바로 목에 두르고 다닐 수 있게 스카프도 사오고. 해 지면 바람이 쌀쌀하더라.”

문 씨는 며칠 전만 해도 분주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문 씨의 딸은 어머니의 주문사항을 일일이 쪽지에 받아 적었다. 어머니의 ‘63년 기다림’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바쁜 나날을 보내던 문 씨는 21일 오전 청천벽력 같은 뉴스 속보를 접했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무기한 연기했다는 소식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뉴스 자막을 본 문 씨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가슴이 미어졌다. ‘이번에는 동생들을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동생들을 만나면 제일 먼저 묻고 싶은 게 있었어. 어머니 아버지가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부모 장례를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평생 체한 듯한 심정으로 살았어. 동생을 만나면 시댁 식구들 얘기도 전해 듣고 남편 영전에 찾아가 꼭 전해주고 싶었는데….”

21일 상봉 연기 소식에도 문 씨는 하루 종일 TV 앞을 떠나지 못했다. 문 씨는 “혹시나 다시 상봉을 한다는 뉴스가 언제 들어올지 몰라 지켜보고 있다”며 조마조마한 심정을 털어놨다. “정말 (상봉이) 기약도 없이 미뤄지면 어떡해요. 우리 나이는 내일을 기약할 수도 없는데….”

상봉단에 포함된 다른 이산가족들도 이날 상봉 연기 소식에 가슴을 쳤다. 황해도가 고향인 이명한 씨(88·여)는 전날까지만 해도 네 딸과 함께 상봉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북한에 남동생과 조카 2명이 살아있는 이 씨는 마트에서 커다란 가방 2개를 구입해 옷가지와 생필품 등을 사서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이 씨의 딸은 “어머니가 오래된 앨범을 뒤져서 찾아낸 가족사진을 다시 인화하려고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다”며 “아침에 뉴스를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파 차마 어머니께 연락을 못 드리고 있다”고 심경을 전했다.

이경주 씨(81)는 이번에 조카 2명을 만나기로 돼 있었다. 이 씨의 아내는 “오전에 남편이 뉴스를 보곤 가슴을 치며 말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고 전했다. 이 씨의 동생은 이미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씨는 최근 “동생의 핏줄이면 내 자식이지”라며 조카들에게 줄 트레이닝복과 생필품을 사러 다니느라 분주했다.

심규섭 남북이산가족협의회 대표는 “60년 넘게 상봉을 기다렸던 이산가족들에게 오늘은 가슴이 무너지는 날일 것”이라며 “대부분이 고령인 분들인데 충격을 받고 건강이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수연·이은택 기자 sykim@donga.com
#이산가족 상봉#상봉 연기#이산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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