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에게 증세 설득할 수 없으면 정부 지출 줄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8일 03시 00분


기획재정부는 내년 총지출을 356조 원, 세금과 기금 수입 등 총수입을 368조 원으로 잡은 2014년 예산안을 26일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 총지출은 올해보다 13조 원 늘어나는 반면 총수입은 5조 원 줄어든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12조 원 흑자이지만,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 기금수지를 제외한 관리대상수지는 20조 원 안팎의 적자여서 ‘적자 재정’이 불가피하다.

불황으로 세수는 감소하는데 지출이 증가하는 것은 복지 사업과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들어가는 돈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그제 당정협의에서 내년 복지 예산을 사상 최대인 100조 원 이상으로 편성하기로 했다. 국회의 예산 심의 과정에서 여야 정치인들이 지역구 사업을 챙기기 시작하면 전체 세출은 정부 원안보다 늘면 늘었지 줄어들기는 어렵다. 부족한 돈을 국채 발행으로 메우면 나랏빚이 증가하고 재정 건전성은 나빠질 것이다.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데는 외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견실한 재정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경제의 성장 동력은 떨어지고 있는데 정치권의 복지 확대 경쟁과 이런 흐름에 편승한 정부 각 부처의 예산 증액 요구로 재정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장애인과 빈곤층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 혜택을 늘리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책무지만 나라곳간 사정을 외면하고 중산층 이상 국민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복지예산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제 여야 대표와의 3자 회담에서 “세출 구조조정과 비과세 축소로 복지 재원을 마련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국민 공감대 하에 증세(增稅)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대통령이 말한 증세는 원론적 언급이며 당분간 세율 인상 같은 직접적인 증세는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공약 거품을 빼지 않는 한 지하경제 양성화나 비과세 감면만으로는 결국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얼마 전 세법 개정안 파동에서도 경험했듯이 많은 국민이 복지 확대는 찬성하면서도 세금 증가에는 반발하는 현실에서 증세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정부는 증세 논의에 앞서 먼저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고도 재원이 모자라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면 국민에게 증세의 불가피성을 설득해 동의를 얻는 수순을 밟는 것이 옳다.
#세금#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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