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민병선]‘관상’의 관상이 좋은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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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선 문화부 기자
민병선 문화부 기자
올여름 한국 영화의 강세가 추석을 겨냥한 영화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11일 개봉한 ‘관상’은 17일 현재 27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1000만 영화가 한 편 더 나오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벌써 나온다. 한 주 먼저 개봉한 ‘스파이’는 170만 명 넘게 관객을 모았지만 ‘관상’ 개봉 이후 관객 수가 뚝 떨어졌다.

‘관상’과 ‘스파이’는 여러 면에서 비교되는 작품이다. 두 영화 모두 제작과정이 순탄하지 못했다. 촬영 초기 ‘스파이’의 연출자는 이명세 감독이었다. 하지만 이 감독이 촬영 중 제작자인 윤제균 감독과의 이견으로 이승준 감독으로 바뀌었다.

‘관상’은 요즘 영화로는 드물게 촬영 기간이 7개월이 넘는다. 영화를 연출한 한재림 감독이 장면의 완성도에 집중하면서 기간이 길어졌다. 기간의 연장은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졌다. 당초 제작비는 60억 원 정도였지만 12억 원이 더 들었다. 기간이 길어지면서 배우들과 스태프의 피로도가 올라갔다는 후문이다.

이런 제작 과정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관상’이 흥행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던 원인으로는 독창적인 시나리오가 꼽힌다. 영화는 계유정난(1453년)이라는 익숙한 시대 배경에 관상이라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접목했다. 영화의 각본은 2010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좋은 시나리오는 모닥불이 부나방을 부르듯 좋은 배우들을 끌어모았다. 송강호 이정재 이종석 조정석 등 호화 캐스팅은 독특한 시나리오의 힘이었다. 김혜수는 출연 분량이 적은 연홍 역할에 평소 출연료보다 훨씬 적은 1억 원을 받고 흔쾌히 응했다.

반면 ‘스파이’의 문제는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트루라이즈’(1994년)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정보원 남편과 그의 정체를 모르는 아내가 벌이는 해프닝을 판박이처럼 담았다.

한국 영화계에서 영화 제작만을 위해 쓰인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들은 저작권도 인정받지 못하고 대우도 시원치 않은 영화계를 떠나 드라마 작가로 전업하고 있다. A급 드라마 작가는 회당 3000만 원 이상을 받는다. 20회 분량의 미니시리즈의 각본을 쓴다면 6억 원 이상을 손에 쥘 수 있다. 반면 영화 시나리오는 잘 받아야 1억∼2억 원 정도다.

시나리오 작가들이 떠나면서 영화계는 만화 소설 등에 콘텐츠를 의존하고 있다. 밤샘 창작의 고통을 통해 탄생한 시나리오가 말라가면서 할리우드 영화를 살짝 비틀어 만드는 편법이 판을 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관상’의 흥행 성공은 의미 있는 사건이다.

민병선 문화부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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