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심지용]장애인 차별도 특혜도 없는 독일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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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용 단국대 언론홍보학과 3학년
심지용 단국대 언론홍보학과 3학년
몇 달 전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중년 남성이 다가와 5000원을 내밀었다. 나는 태어날 때 의료사고로 뇌손상을 입어 혼자선 일어설 수 없다. 주위의 시선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는 나에게 집중됐다. 정중히 거절했지만 씁쓸함을 감출 순 없었다.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장애인을 ‘불쌍한 존재’로만 인식하는 것 같아서였다.

그날의 경험으로 마음을 다치진 않았다. 과거에도 유사한 경험이 많았다. 예를 들어 내가 갈 수 있는 음식점은 정해져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앉아 식사하는 곳은 갈 수 없어서다. 어린 시절엔 누군가의 등에 업혀 음식점에 들어갔다. 그때마다 식사를 하던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연예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난 23년간 많은 이들의 관심으로 포장된 동정어린 시선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불쌍하다고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다. 이런 세태가 나를 더 열심히 살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내가 학창시절을 보낸 2000년대엔 장애인이 다닐 수 있는 일반 학교와 학원이 별로 없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장애인이 다니는 특수학교에 다녔고, 남들이 다니는 학원 대신 학습지나 개인학습을 통해 공부했다. 또래들에게 뒤처질까 더 열심히 노력했다. 이런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대학 입시에서 학부 수석으로 합격한 것이다. 그러면서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겠다는 꿈도 싹트기 시작했다.

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선행과제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잘 어우러져 사는 선진사회의 경험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운 좋게도 최근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주최한 ‘장애청년드림팀’을 통해 독일을 방문했다. 복지 선진국으로 알려진 독일의 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인상 깊었던 것은 한인회에서 만난 교민의 말씀이다. 그는 “우리 아파트는 1940년대 건물이라 계단이 설치돼 있었는데, 6년 전 장애인 부부가 이사 오자 정부의 지원으로 휠체어가 다닐 수 있게 계단을 개조했고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했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가 ‘잠재적 장애인’이라는 의식이 전제돼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장애인을 대하는 시민의식이 돋보였다. 독일 버스의 문에는 접이식 슬로프가 설치돼 있다. 슬로프를 펴는 것은 본래 운전사가 할 일이지만 시민들도 작동할 수 있다. 내가 버스를 탈 때는 시민들이 슬로프를 펴서 나를 도와줬다. 시간이 걸렸지만 시민들은 당연히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정치 분야도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와 사뭇 달랐다. 특히 선거 때 장애인에게 인위적으로 비례대표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연방정치교육원 관계자는 “능력이 있으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선거에서 패배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런 의식이 독일을 복지 선진국으로 이끈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는 ‘통합’이다. 정치권은 통합 사회를 위해 다양한 법을 제정 및 개정했다. 그러나 이제 입법 활동만으론 장애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 장애인을 ‘불쌍해서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 아닌 ‘기회가 주어지면 할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일 때 통합 사회로 가는 문도 열릴 것이다.

심지용 단국대 언론홍보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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