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익두]인류 보편적 음악 길 연 4박자 비트 ‘강남스타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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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두 전북대 국문과 교수·공연학
김익두 전북대 국문과 교수·공연학
18세기 말 19세기 초 서양의 대문호 괴테가 쓴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9년)에는 지혜의 여인 ‘마카리에 할머니’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이 나온다. “(그녀는) 우리가 감히 발설해서는 안 되는 어떤 관계를 우주의 태양계와 맺고 있다. 마카리에는 그 관계를 영혼과 정신 속에, 그리고 상상력 속에 품고 있고, 그 관계를 직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녀 자신도 말하자면 그 관계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3권 15장)

괴테는 이 ‘마카리에 할머니’를 통해서 삶의 가장 드높은 지평의 ‘지혜’를 마치 벌이 꿀을 모으듯이 모으려 하고 있다. 그 지혜의 핵심은 인간이 우주적 ‘흐름’을 깨닫고 그것에 동참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우주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음악적으로 보자면 ‘소리’이고, 구체적으로는 ‘우주의 소리’이다. 따라서 인간은 우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의 ‘흐름’을 파악해 그것에 참여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거대한 우주의 일부로서의 ‘지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것에 참여하여 하나가 될 필요가 있다. 지구의 소리,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자연의 소리’이고 그중에서 가장 원초적인 소리는, 인간이 그곳으로부터 나왔다는 ‘바다’의 소리, 더 궁극적으로는 ‘침묵’의 소리라고 머리 셰이퍼는 그의 책 ‘사운드 스케이프: 세계의 조율’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의 소리에도 오랫동안 귀를 기울여 그 속에서 음악을, 우주의 소리를 듣고자 하였다. 그것이 이른바 ‘음악’, 그중에서도 ‘성악’이다. 인간에 의해 조직된 소리를 ‘음악’이라 하고, 그중에 인간의 목소리를 가지고 조직한 소리를 ‘성악’이라 한다.

인간의 소리를 조직한 성악은 인류 역사상 동서고금에 수많은 고전적 명작을 남겼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가 어떤 지역에서 그 지역 사람들의 특수한 로컬리티와 관련되어 조직되고 양식화되고, 그것이 정치적 문화적 권력과 연계되어 전파·전승되어 왔다. 서양 고전음악이 그렇고, 미국 컨트리 음악이 그렇고, 아프리카계 재즈가 그렇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전 세계의 ‘자연·문화적 보편성’에 근거한 보편음악으로서의 성악의 유산은 아직까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근본적으로 ‘로컬 뮤직’만이 있었고, ‘글로벌 뮤직’은 없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세계의 한 모퉁이 한반도에서 이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빠른 4분의 4박자 비트를 기마 자세의 율동과 결합한, 이른바 ‘말춤 비트’의 대중음악인 ‘강남 스타일’이다. 빠른 4분의 4박자 비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보편적인 춤음악 비트이다. 그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어느 시대에도 이 비트는 인류의 몸을 들썩이게 하고 춤추게 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최근에 싸이가 보여준 ‘강남 스타일’은 인류가 이루어온 가장 보편적인 ‘집단적 신명’ 창출의 비트인 빠른 4분의 4박자 비트를,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집단 무의식적 율동 동작’인 ‘말춤, 기마춤’ 동작과 결합함으로써, 바야흐로 우주적 음악, 적어도 전 인류 보편적 음악에의 길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열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엊그제 프랑스의 문명 비평가 기 소르망 씨가 우리 문화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세계 문화의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우리의 박물관과 ‘케이팝’을 잘 활용하라고 주문한 말도 우리에게 희망을 갖게 한다. 21세기 초, 전 세계가 기대하고 있는 이 새로운 문명 창조의 길을, 우리는 이제 어떻게 개척해 나아가야만 할까.

김익두 전북대 국문과 교수·공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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