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유성열]蔡총장 결단,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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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열 사회부 기자
유성열 사회부 기자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을 한 언론에서 제기한 지 10여 일이 흘렀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감찰 지시가 내려졌고 이에 불복한 채 총장이 사의를 밝혔다. 검찰 조직은 하루도 평온한 날 없이 논란의 도마 위에서 진통을 겪었다. 여야 간 갈등도 이 문제로 더 심각해졌다.

이 사태를 풀 수 있는 최우선 당사자는 채 총장이다. 채 총장은 보도가 나온 뒤 “의혹이 사실이 아니며,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내는 등 빠른 시일 내 진상 규명을 하겠다”면서 유전자 검사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의를 표명한 뒤에는 “둥지를 떠난 새는 말이 없다”는 말만 남긴 채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채 총장이 침묵하는 사이 논란은 증폭됐고 법무부의 감찰 지시가 부당하다며 반발했던 검사들 사이에서도 ‘시간만 끌다가 흐지부지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

결국 채 총장은 17일 “소송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다. 연휴가 끝난 23일경 조선일보를 상대로 소송을 낼 예정”이라고 변호인 등을 통해 밝혔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채 총장이 대응 의지를 보인 것에 대해 검찰 조직도 일단 안도하는 눈치다.

청와대와 법무부 역시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주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법무부에 힘을 실어주면서 야당의 공세에 밀리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청와대와 채 총장 모두 혼외 아들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가 드러날 경우 어느 한쪽이 심각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게임’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검사들은 늘 “사실관계를 규명하려면 사건 당사자들이 조사에 적극 협조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채 총장은 특수통으로 후배 검사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검사다. 논란이 해소되고 이 사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소송 제기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소송은 판결이 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당사자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유전자 검사를 강제할 수도 없다. 빠른 시간 내 논란을 종식하려면 채 총장이 소송과 더불어 반드시 신속한 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따라서 채 총장은 의혹의 당사자인 임모 여인을 설득해 조속히 유전자 검사를 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양측이 동의만 하면 유전자 검사 결과는 길어야 1, 2주면 나온다. 검찰의 한 간부는 “쏟아지는 의혹을 해소하고 검찰 조직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총장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총장을 믿는 후배들 역시 그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들 역시 그 무엇보다 ‘진실’이 조속히 밝혀지길 원하고 있다.

혼외 자녀 의혹의 진실 규명과 더불어 반드시 진상 규명이 필요한 사안이 또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이 채 총장의 혼외 자녀 의혹을 조사하면서 과연 적법한 절차와 과정을 밟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청와대 등이 채 총장을 ‘찍어내기 위해’ 혼외 아들 의혹을 받고 있는 아이와 어머니 임 씨 등의 개인 정보를 불법적으로 획득했다는 논란은 이미 의혹 차원을 넘어 반드시 진위를 밝혀야 할 이슈가 됐다.

청와대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은 16일 “학교 등 관계기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해 응하면 자료를 확보하거나 열람했고, 이를 거부하면 전혀 확인을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그동안 검찰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미 청와대가 언론 보도 이전에 그 같은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정황이 다수 확인되고 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민정수석실의 불법 정보 취득 의혹은 반드시 수사로 짚고 넘어갈 문제이고, 또 수사를 통해서만 사실관계를 가려낼 수 있다”며 “검찰이 수사만 할 수 있다면 이 수석의 해명이 사실과 맞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지난해 4월 7일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부활절 전야 미사에서 “사랑은 증오보다 강하며 진실은 거짓보다 강하다”고 했다. 교황이 세계인들에게 강조했던 평범한 진리를 이제 채 총장과 검찰, 그리고 청와대와 법무부가 함께 증명해야 할 차례다. 바로 그것이 국민이 그들에게 위임한 권한이자 책무이기 때문이다.

유성열 사회부 기자 ryu@donga.com
#채동욱 검찰총장#청와대#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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