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빈 “외로움 달래준 야구, 내 삶의 일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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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9월 17일 07시 00분


스윙폼이 예사롭지 않다. 서울 퀄리티스타트의 ‘수단 용병’ 이규빈 씨는 고교시절 배구, 테니스, 스쿼시 등을 섭렵한 스포츠우먼이다. 타고난 운동신경의 소유자인 만큼 야구를 습득하는 시간도 빨랐다. 2013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에서도 팀의 중심타자로 활약 중이다. 익산|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스윙폼이 예사롭지 않다. 서울 퀄리티스타트의 ‘수단 용병’ 이규빈 씨는 고교시절 배구, 테니스, 스쿼시 등을 섭렵한 스포츠우먼이다. 타고난 운동신경의 소유자인 만큼 야구를 습득하는 시간도 빨랐다. 2013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에서도 팀의 중심타자로 활약 중이다. 익산|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 서울 퀄리티스타트 야구단 중심타자

‘수단 용병’이라 불리는 그녀 이규빈


“수단 용병 어디 갔어?”

시끌벅적 왁자지껄. 14일 경기에서 막 끝내기 콜드게임 승리를 거둔 서울 퀄리티스타트 선수들이 깔깔깔 웃으며 누군가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아프리카에서 온 듯한 검은 피부의 ‘외국인선수’는 보이지 않았다. 궁금해서 함께 두리번거리니, 귀여운 인상의 선수 한 명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동료들이 인터뷰 대상으로 적극 추천한 이규빈(27) 씨였다.

학창시절 아버지 따라 수단서 6년 살아
다시 한국 왔을 땐 아는 사람 하나 없어
그러다 찾은 야구장…새로운 식구 생겨

야구장 대여비도 자체 해결…지원 절실
내년엔 투수 꿈…신나게 야구하고 싶어


● 이규빈 씨가 ‘수단 용병’으로 불리는 이유

이규빈 씨는 팀 내에서 ‘수단 용병’으로 통한다. 국적은 당연히 대한민국. 누가 봐도 한국사람이다. 그러나 학창 시절 외국에서 12년을 보낸 이력을 갖고 있다. 그것도 교민들이 거의 없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6년이나 살았다. 무역업을 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열 살 때 수단과 인연을 맺었고, 고교 시절 미국으로 이사해 대학까지 졸업했다. 흔치 않은 지역 출신인데다 운동신경까지 뛰어나 동료들에게 그런 별명을 얻은 것이다.

한국에 다시 발을 디딘 때는 2009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축구와 럭비 동호회에 가입해봤지만, 왠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운동인 듯했다. 그러다 야구를 만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공고를 보고 찾아갔다가 시작하게 된 야구는 이 씨에게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뿐만 아니다. 야구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새로운 가족이 돼줬다. 이 씨는 “처음에는 야구가 내 외로움을 달래줬고, 이제는 삶의 일부가 됐다. 우리 팀원들과 주중에도 자주 만나고 매주 일요일 함께 연습하면서 한 식구처럼 지낸다”고 털어놓았다.

지금 이 씨는 대학 동기들과 IT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팀에서도 ‘만능 스포츠우먼’의 능력을 뽐내고 있다. 고교 시절 배구, 테니스, 스쿼시를 하면서 운동능력을 키워온 덕분이다. 처음에는 외야수로 출발했다가 올해는 1루수를 보면서 중심타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 씨는 “내년에는 투수를 한 번 해보는 게 소원”이라며 활짝 웃었다.

● 베테랑 같은 신생팀 “우리 팀 지원 좀 해주세요∼”

퀄리티스타트는 다음 라운드에서 서울 블랙펄스를 만난다. 지난해 초대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 우승팀이다. 그러나 이규빈 씨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도 2승을 했고, 3차전 없이 부전승으로 8강에 올랐다. 함께 훈련을 많이 했고 분위기도 좋기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자신감을 표현했다.

퀄리티스타트는 올해 1월 창단한 팀이지만, 강팀이었던 마구잡이 소속 선수들이 대거 옮겨온 터라 다른 신생팀들보다 실력이 월등하게 좋다. 이 씨는 “처음에는 내가 초보라서 기술적으로도 열악하고 잘 몰랐는데, 점점 경기를 해가면서 나아지는 내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다. 또 이제는 새로 들어오는 회원들을 가르쳐주고 좋아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똑같이 재미있다”고 귀띔했다.

다만 최근 고민이 있다면 외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같은 여자야구팀이라도 서울 CMS처럼 후원기업이 있거나 지자체에서 어느 정도 지원을 받는 시 소속 팀들은 환경이 좀 나은 편이다. 그러나 퀄리티스타트는 지금 후원이 전무하다. 유니폼도 선수들이 돈을 모아 맞췄고, 매주 일요일 연습할 야구장 대여비용도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이 씨는 “지금 우리 팀도 구청 쪽을 포함해 후원해주실 분들을 찾고 있다. 이 문제만 해결되면 조금 더 신나게, 그리고 열심히 야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익산|배영은 기자 yeb@donga.com 트위터 @goodgo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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