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먹는 명절’에서 ‘사 먹는 명절’로… 레디메이드 한가위 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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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제품 모둠전 매출 작년보다 75% 늘고… 초벌구이 동태전-데워 먹는 송편 불티
밀가루-돼지고기 판매는 10%이상 줄어

롯데마트는 고객이 동그랑땡, 산적, 빈대떡 등의 전을 원하는 대로 골라 담아 구입하도록 하는 행사를 19일까지 연다. 고객들의 반응이 좋아 지난해 6가지였던 전의 종류를 올해는 10가지로 늘렸다. 롯데마트 제공
롯데마트는 고객이 동그랑땡, 산적, 빈대떡 등의 전을 원하는 대로 골라 담아 구입하도록 하는 행사를 19일까지 연다. 고객들의 반응이 좋아 지난해 6가지였던 전의 종류를 올해는 10가지로 늘렸다. 롯데마트 제공
대형마트에 나가 추석에 대비해 장을 본 직장인 박선영 씨(34·여). 예년 명절에는 밀가루 식용유 동태살 등 음식 재료들을 장바구니 가득 샀지만 올해는 그 부피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대형마트의 ‘명절음식 골라 담기’ 코너에서 전, 나물 세트, 송편 등의 완제품을 구입했기 때문이었다.

박 씨는 “지난해까지는 조상에 대한 정성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그래도 재료를 사다가 음식을 만들어 차례를 지냈는데 마트에서 만든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며 “원하는 음식을 꼭 필요한 만큼만 구입하면 음식 준비하느라 짜증날 일이 없고 남는 음식도 없고 경제적이어서 올해는 완제품을 많이 샀다”고 말했다.

전통시장이나 가게에서 제사 음식을 사다가 차례상에 올리는 데 대한 민망함도 줄어드는 사회적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특히 1∼2인 가구 증가 추세와 맞물려 ‘완제품 차례음식’이 더욱 늘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준상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가족 구성이 줄고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명절을 ‘차례’ 대신 ‘휴식’의 개념으로 보는 추세”라며 “음식 조리에 시간을 줄이려 하고, 차례상에 올라갈 완제품 제사 음식의 종류도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재료보다 완제품이 인기

이마트 자체 브랜드 냉동 제품인 ‘계란 옷 명태전’. 이마트 제공
이마트 자체 브랜드 냉동 제품인 ‘계란 옷 명태전’. 이마트 제공
가족 친척 다 같이 모여 전을 굽고 송편을 빚는 추석 명절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각자 음식을 만들어 오거나 아예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도 생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명절 음식 시장에서도 재료보다 ‘레디메이드(Ready-made)’라 불리는 완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공덕시장’이나 종로구 예지동 ‘광장시장’ 등 재래시장에서 파는 명절 음식을 대형 유통업체나 식품회사들이 제품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최근 이마트에서는 ‘계란 옷 명태전’이라는 자체 브랜드(PB) 냉동 제품이 인기 제품 중 하나로 꼽힌다. 밀가루를 묻힌 명태살을 달걀에 버무려 한 번 구운 것을 다시 얼린 제품이다. 이른바 ‘초벌구이’를 해놓아 집에서 프라이팬에 1∼2분만 데우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명절 용품으로 나온 것은 아니지만 요리할 시간이 없거나 명절을 간편하게 쇠려는 사람이 늘면서 최근 매출이 평년 수준의 2배나 뛰었다. 송편도 데워 먹는 ‘냉동 송편’이 인기다.

이정웅 이마트 간편가정식 담당 바이어는 “맞벌이 주부나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 고객들을 대상으로 명절 음식을 간편하게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며 “‘완제품’ 형태의 상품 물량을 지난해에 비해 10% 이상 늘렸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전 6종을 대상으로 ‘골라 담기’ 행사를 벌이던 롯데마트는 올해 전 종류를 10개로 늘렸다. 나물 역시 고사리, 콩나물 등 양념장에 버무린 완제품 6종을 이번 추석 기간에만 상품으로 내놨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9일부터 16일까지 완제품 형태의 모둠전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추석 D-11∼D-4일)과 비교해 75.5%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밀가루는 지난해보다 매출이 10.1%, 부침가루는 2.1%, 돼지고기는 17.5% 각각 떨어졌다.

○ 작아진 가족, 간소화된 명절 음식

홈플러스가 내놓은 ‘소포장’ 명절 음식 세트. 홈플러스 제공
홈플러스가 내놓은 ‘소포장’ 명절 음식 세트. 홈플러스 제공
완제품 명절음식 내놓기에는 식품 업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CJ제일제당은 동그랑땡을 만들기 위해 돼지고기를 다지고 채소를 마련하느라 애쓰는 주부들을 위해 아예 고기를 다져 부추와 양파, 당근 등 채소를 넣은 제수용 냉동식품 ‘프레시안 도톰 동그랑땡’을 내놨다.

선진포크도 ‘도톰한 너비아니’, ‘날치알고기 완자’ 등 그냥 프라이팬에 굽기만 하면 되는 냉동식품을 선보였다. 온라인에서는 아예 차례상 전체를 세트로 내놓은 ‘차례 대행’ 상품이 인기다. 과일부터 나물, 전, 구이, 탕, 떡 등 20여 개 제품 중에서 고객이 주문하면 오전에 만들어 오후에 배달해주는 형태로 3∼5인분짜리 실속형 상차림은 20만 원대 초반, 6∼10인분 표준형은 20만 원대 후반에 판매되고 있다.

완제품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아예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나 가족과 함께 추석을 지내지 못하는 20, 30대 젊은 ‘싱글족’들도 있다. 홈플러스는 필요한 만큼 먹고 많이 먹지 않는다는 특성을 가진 이들을 겨냥해 아예 ‘소포장’ 완제품을 대거 내놨다. 동그랑땡, 동태전 등 부침 전과 송편, 나물을 100g 단위나 팩(300g) 등 작은 용기에 담아 판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대형마트#추석 매출#모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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