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만난 사람/정성희]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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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부품의 운전경험-고장이력 전산관리… 비리 끊겠다”

원자력 전문가인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장은 원전 안전성에 대한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한 방법은 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지속적 소통밖에 없다고 말한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원자력 전문가인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장은 원전 안전성에 대한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한 방법은 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지속적 소통밖에 없다고 말한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올해처럼 원자력이 뜨거운 화두였던 해는 없었다.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됐으며 한미 원자력협정을 놓고 한미 간 줄다리기가 치열하게 벌어졌다. 5월엔 국내 원자력발전소에 사용되는 부품의 시험성적서가 조작되고 그 과정에서 뇌물이 오가는 대형비리가 터졌다. 원전 비리는 일부 원전의 가동 중지로 이어져 올여름 전력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일본산 수산물이 방사성 물질에 오염되어 있다는 ‘일본 방사능 괴담’도 급속히 퍼져 나갔다.

추적관리시스템 구축 최소 2년 걸려


원자력 안전의 수문장을 맡고 있는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장(66)을 만났다. 서울대 교수 출신인 이 위원장은 40여 년간 원자력 분야에서 일해 온 전문가로 올해 4월 15일 위원장에 취임했다. 시험성적서의 조작 사건을 폭로한 것이 위원장으로서 첫 ‘작품’이었다.

―원전 비리에 대해 엇갈리는 시각이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원전 마피아의 구조적 비리로 보고 다른 한편에서는 국산 부품의 품질 관리 미비로 인한 사건으로 보던데….

“1979년 스리마일 사고로 미국이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면서 미국 내 부품업체들이 사라졌다. 우리는 그때부터 원전 건설을 본격화해 부품 수요가 늘어났다. 전문 제품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원전 운영자는 2003년 일반 제품도 방사능 노출 등 극한 상황에서도 견디는 조건을 만족하면 원전 부품으로 받아주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원전 측이 시험성적서를 요구했다. 처음엔 제대로 된 시험성적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매번 시험성적서를 마련하는 데 너무 많은 돈과 시간이 소요되자 과거에 받아놓은 시험성적서의 날짜를 바꾸거나 시험 조건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편법을 쓰게 된 것이다.”

―앞으로 비리를 어떻게 막을 건가.

“과거의 납품 비리나 서류 조작을 밝혀내기 위해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했다. 포상금을 최대 10억 원까지 내걸었다. 현재 일어나는 비리도 막아야 한다. 그러자면 부품이 진짜인지 현장에서 물리적으로 확인하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직원 90명 가운데 현장 점검이 가능한 인력은 48명 정도인데 이 정도 인력으로 몇백만 개 부품을 확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온 방안이 추적관리시스템이다. 원전의 주요 부품에 대해 운전 경험과 고장 이력을 전산으로 기록해 관리하는 것이다. 다만 워낙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해 시스템 구축까지는 최소 2년이 걸릴 것 같다.”

월성1호기 안전성 확인땐 연장 가동

―지난여름 사상 최악의 전력 위기를 넘겼는데 올겨울 사정은 어떨 것 같은가.

“신고리1, 2호기와 신월성1, 2호기가 정상화돼야 전력 사정이 나아질 수 있다.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11월 말이나 12월 초에 정상 가동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건 기계건 1년 내내 일할 수는 없다. 기계가 점검을 받는 동안 다른 전력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구조적으로 예비율이 너무 낮아 발전소를 무리하게 가동하고 있다.”

―지난해 설계 수명이 끝난 월성1호기의 연장 가동 여부는….

“월성1호기는 현재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고 있는데 스트레스 테스트가 계속 운전의 전제조건은 아니다. 스트레스 테스트란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극단적 사건에 대한 원전의 안전 여유도를 평가하는 것이다. 월성1호기뿐 아니라 모든 원자력발전소들이 받아야 한다. 월성1호기는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와 별개로 계속 운전 심사를 통해 안전성이 확인될 경우 계속 운전을 허용할 것이다.”

―월성1호기는 계속 운전을 염두에 두고 7000억 원을 미리 투자했는데….

“자동차 안전 점검을 받으러 갈 때 운전자가 미리 걱정스러운 부품을 교체하지 않나. 월성1호기도 마찬가지다. 다만 너무 많은 돈을 들인 것이 문제다. 그러나 국민도 ‘노후 원전’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월성1호기가 30년 수명을 넘겼으니 낡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주요 부품을 교체했기 때문에 새것과 다름없다. ‘노후화됐으니까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수산물 걱정하지만 위험하지 않아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원전 반대론자인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와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위원장이 멤버로 들어왔다.

“9명의 위원 가운데 7명의 비상임위원을 지금까지는 정부가 추천했으나 올해 원안위가 개편되면서 4명이 국회 추천으로 바뀌었다. 이 중 야당 추천 2명에 원자력 반대론자가 들어왔다. 처음엔 나도 걱정했으나 지금까지는 일부러 발목을 잡거나 회의를 훼방하는 일은 없었다. 원안위 회의는 모든 속기록이 공개되고 있으니 언제든 확인해도 좋다. 오히려 이들로 인해 객관성과 투명성이 보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반대 인사가 있어도 웬만한 사안에 대해서는 투표보다는 토론을 통한 합의제로 운영할 생각이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에 지하수 오염을 막기 위해 동토차수벽을 추진한다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과학자로서 효과가 크지 않다고 본다. 땅속은 균질하지 않다. 여러 성질을 가진 물질이 혼합돼 있으면 균열 가능성이 높아진다. 차수벽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효과가 없지는 않겠지만 들인 돈에 비해서 크지는 않을 것이다. 차수벽보다는 지하수로를 내주는 방안이 어떨까 싶다. 지하수는 특성상 멋대로 흐르기 때문에 차라리 수로를 내주어 그곳으로 물을 모이게 하면 통제가 쉬울 것이다. 다만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이고 일본 도쿄전력이 이를 예상하고 대책을 세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민불신 잘 알지만 사고와 고장은 달라

―그래도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불신을 씻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수산물에 대한 국민 거부감이 과도한 느낌이다. 일본이 해수 측정 결과를 정기적으로 보내오는데 변화가 크지 않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어느 바다에서도 세슘이 나오긴 한다. 그 세슘은 후쿠시마 사고가 아니라 과거 핵보유국들의 수중 핵실험으로 인한 것이다. 현재 수산물의 세슘 기준은 kg당 370Bq(베크렐)인데 현재 근해에서 잡히는 우리 수산물의 세슘은 그보다 훨씬 낮은 4Bq 안팎이다.”

이 위원장은 요즘 횟집에 자주 간다고 했다. 손님이 없어 제대로 ‘대접’ 받고 있단다. 이 위원장은 안전에 대한 국민의 높은 기대 수준과 과학자로서의 소신 사이에서 고뇌가 많아 보였다. 원자력에 대한 지지도를 결정하는 것은 기술 수준이나 제도가 아니라 정부에 대한 신뢰도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지 못하는 사람의 말은 아무리 옳은 주장이라도 신뢰하지 않는다. 원자력이 딱 그렇다. 신생 조직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아직 정부 신뢰도 조사를 받지 않았지만 이 위원장은 “100점 만점에 30점 정도”라고 자평했다. 이를 50, 60점대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국민이 우리(원자력안전위원회)를 믿지 않는 것을 안다. 과거에 말을 많이 번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가지만 이해했으면 한다. 기계는 고장 날 수 있다. 사고와 고장은 다른 것이다.” 그는 원전이 아니라 국민 인식과 사투(死鬪)를 벌이고 있었다.

▼ 말뿐인 원자력 안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인력-예산 턱없이 부족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원자력 진흥과 규제를 분리하라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권고를 받아들여 2011년 10월 출범했다.

박근혜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정부 개편안에서 원안위를 없애고 관련 기능을 산업통상자원부나 미래부로 이관하려고 했다. 대통령선거 때 ‘원자력 안전’을 강조했던 박근혜 정부에서 원안위 폐지가 말이 되느냐는 여론에 따라 기사회생했지만 장관급 위원회는 총리실 산하 차관급 기구로 격하됐다. 원안위의 독립성은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법률로 보장돼 있다. 문제는 독립성을 담보할 권한이 없다는 점이다. 차관급 원안위원장은 국무회의 멤버가 될 수 없다. 에너지 경제와 관련된 장관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한다. 장관급이던 강창순 전임 위원장은 현안이 있을 때 국무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개진했다.

장관급이냐, 차관급이냐 하는 것보다 더 큰 장애요인은 원안위가 실질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인력과 예산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규제 인력은 원안위와 원자력안전기술연구원(KINS)을 포함해 원전 1기당 18명으로 미국(1기당 37명)의 절반에 못 미친다. 원전 현장에서 실시간 원전 운영을 감시하는 현장 규제 인력 역시 원전 1기당 1.8명으로 미국과 프랑스(3.7명)의 절반이다. 해수 방사능을 측정할 수 있는 측정 선박이 없어 해양수산부 선박을 빌려 사용하고 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를 비롯한 외국 규제기관들은 독립적인 예산 조직 편성 기능이 있다.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욕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데 시스템이 따르지 못하는 것이 원안위의 딜레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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