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한쪽도 나눠먹는 ‘한 지붕 여섯 가족’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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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영암군 공동주택 ‘달 뜨는 집’ 찾아가보니

집 없는 설움을 겪다가 월출산 자락에 보금자리를 얻고 한 가족이 된 ‘달뜨는집’ 2호 식구들이 13일 베란다에 모여 활짝 웃고 있다. 영암=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집 없는 설움을 겪다가 월출산 자락에 보금자리를 얻고 한 가족이 된 ‘달뜨는집’ 2호 식구들이 13일 베란다에 모여 활짝 웃고 있다. 영암=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13일 전남 영암군 영암읍 낭주로 227.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월출산 자락에 아담한 단층집 한 채가 눈에 띄었다. 어린아이 키 만한 소나무와 선홍빛으로 물든 배롱나무가 어우러진 앞마당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영암군이 집 없는 저소득 주민들을 위해 무료로 지어준 공동주택 ‘달 뜨는 집’ 2호다. 2008년 9월 입주식을 가진 이곳에는 홀몸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다문화가정 등 6가구가 오순도순 살고 있다. 가구당 면적은 32m². 10평 공간에 거실, 부엌, 욕실은 물론이고 옷장, 신발장 등 살림살이가 깔끔하게 갖춰져 있다.

이들은 얼굴 한번 마주한 적이 없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저마다 딱한 사연을 안고 이곳에 와 한 가족이 됐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김쌍례 할머니(73)는 이곳에 오기 전 사글세 집을 전전했다. 장애수당과 기초노령연금 등으로 어렵게 생활하다 달뜨는집으로 옮기며 난생 처음 자신의 이름을 문 앞에 내건 보금자리를 얻었다. 다리가 불편해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그는 “의지할 사람이 있고 자원봉사자도 자주 찾아주니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입주자 가운데 최고령인 이복동 할머니(83)는 “팔순 넘어 이런 호강이 없다. 살기 좋고 마음 편하니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했다. 그는 마을 이장 집 창고를 개조한 방에서 생활하다 4년 전 이곳에 거처를 마련했다. 한글을 깨우쳐 주는 ‘문해(文解)학교’에 다니던 할머니는 스승의 날 행사 때 김일태 영암군수를 만나 딱한 사정을 털어놓으면서 달뜨는집에 입주했다. 그는 혼자 집앞 텃밭을 가꿀 정도로 건강해 거동이 불편한 옆방 할머니를 살뜰히 챙긴다.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곽윤숙 할머니(82)는 “오늘도 언니(이복동 할머니)가 아욱으로 죽을 쒀 가져왔다”며 “서로가 없는 살림이지만 콩 한쪽도 나눠 먹을 정도로 정이 깊다”고 자랑했다.

달뜨는집 식구들은 각자 살림살이를 꾸리지만 수도료는 공동으로 분담한다. 이복동 할머니는 “지난달에 수도요금이 3만5000원 넘게 나왔는데 알고 보니 옆방 할아버지가 물을 많이 써 ‘주의’를 줬다”며 웃었다.

김수한 씨(23)는 3년 전 한 식구가 됐다. 어릴 적 집을 나간 어머니와 소식이 끊긴 데다 5년 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세 살 아래인 여동생 손을 잡고 이곳에 왔다. 그는 지난해 검정고시에 합격해 고졸 자격증을 딴 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 중이다.

다문화가정인 신성현(46)·황은경 씨(36) 부부는 두 달 전 이사를 왔다. 8년 전 필리핀에서 시집을 온 황 씨는 영암군 도포면에서 살다가 남편이 노동일을 하다 다쳐 운신을 못하게 되자 읍으로 나왔다. 할머니들은 황 씨 가족이 입주하자 ‘모처럼 사람 사는 집 같다’며 좋아했다. 여덟 살, 일곱 살 된 남매의 재롱을 보면서 적적함을 달래고 성격이 활달한 황 씨가 딸처럼 살갑게 굴어 집 분위기가 밝아졌기 때문이다.

6가구가 나란히 이어진 공동주택 한가운데는 앞뒤가 툭 트인 쉼터가 있다. 쉼터에서는 월출산 너머로 뜨는 보름달이 한눈에 들어온다. 달뜨는집 식구들은 보름달이 뜨면 무슨 소원을 빌까. 할머니들은 “이 나이에 병원 신세 안 지면 됐지 소원은 무슨 소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달뜨는집에서 처음으로 명절을 맞는 황 씨는 이번 추석이 무척이나 기다려지는 표정이다. “보름달 보면서 소원을 빌면 진짜 이루어진다더군요. 저는 ‘직장을 갖게 해달라’고 빌고 싶어요.”

달뜨는집은 농촌형 주거복지 성공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영암군이 영암지역자활센터와 손잡고 소외계층을 위한 집짓기 사업에 나선 것은 2006년. 군서면에 1호를 건립한 이후 지금까지 7호를 지어 28가구가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수시로 찾아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을 위해 청소를 하고 밑반찬도 만들어 주고 말벗도 돼준다. 영암군은 내년 말까지 11개 전체 읍면에 달뜨는집을 건립할 예정이다. 김일태 군수는 “군에서 집터와 건축비를 부담하고 자활센터에서 자원봉사 형태로 운영을 돕는 민관협동 복지 모범사례로 전국에서 벤치마킹하려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영암=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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