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보호 업무에 女리더 많아진건 ‘마더십’ 통했기 때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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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리더십 SWOT 분석… 금융권 소비자보호담당 여성 5인에 듣다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만난 신보금 신한은행 소비자보호본부장, 권선주 기업은행 금융소비자보호센터 부행장, 오순명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 노유정 하나은행 금융소비자보호부장, 박윤옥 외환은행 금융소비자보호센터장(왼쪽부터)이 여성 리더십의 강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 요인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만난 신보금 신한은행 소비자보호본부장, 권선주 기업은행 금융소비자보호센터 부행장, 오순명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 노유정 하나은행 금융소비자보호부장, 박윤옥 외환은행 금융소비자보호센터장(왼쪽부터)이 여성 리더십의 강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 요인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10층 회의실에 주요 금융회사와 기관의 금융소비자보호 책임자들이 모였다. 금감원과 IBK기업은행, 신한은행, 외환은행, 하나은행 등 5곳의 소비자보호 담당 부서장이나 임원들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다. 국내 금융사 52곳의 전체 임원 가운데 여성이 1.8%에 그칠 정도로 보수적인 금융권에서 유독 소비자보호 분야는 여풍(女風)이 거세다.

오순명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 권선주 기업은행 금융소비자보호센터 부행장, 신보금 신한은행 소비자보호본부장, 박윤옥 외환은행 금융소비자보호센터장, 노유정 하나은행 금융소비자보호부장 등이 리더로 성장한 비결은 뭘까. 이들이 말하는 ‘여성 리더십’을 전략 수립 기법인 ‘SWOT’의 틀로 들여다봤다.

○ ‘마더십’이 소비자 분야에서 강점

“내 자식도 내 뜻대로 절대 안 되잖아요. 소비자도 마찬가지예요. 엄마로서 자녀를 키우며 들어주고 배려하는 자세가 소비자보호 업무에서 특장점이 돼요.”(권 부행장)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챙길 정도로 주목받는 소비자보호 영역을 여성 리더가 장악한 건 ‘마더십(mothership)’이 통했기 때문이었다. 섬세하면서 감성적인 여성의 특성이 온갖 불평을 온몸으로 받아야 하는 소비자보호 업무에 적합했다는 얘기다.

노 부장은 3년 전 서울 강남에서 지점장으로 근무했다. 당시 남자 실무자가 고객에게 실수를 저질러 은행이 한바탕 뒤집어졌다. 고객은 은행을 상대로 법적 조치에 나설 태세였다. 해명하고 사정하려 해도 전화는 아예 받지도 않았다. 노 부장은 직접 경기 외곽에 있는 고객의 집으로 향했다. 문 앞에서 과일바구니를 들고 서성이길 4시간. 오후 11시쯤 나타난 고객에게 맞장구를 쳐가며 불만을 하나하나 귀 기울여 들었다. 이날 이후 사건은 마무리됐다.

노 부장은 “남자 직원들은 보통 빨리 타협하려고만 하는데 여성은 감성적으로 공감하려고 노력하니 소비자가 더 편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 여성 내면의 ‘이중 유리천장’ 극복해야

신 본부장은 대리로 처음 지점에 발령받았을 때 들었던 얘기를 아직도 되새긴다. 처음 참석한 회의에서 남자 지점장은 여자 대리를 앞에 두고 “이제부터는 직원들을 깨기가 어렵겠네. 허허…”라며 헛웃음을 흘렸다. 여성들은 일과 관련한 지적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지적하고 혼내기가 어려워졌다는 얘기. 신 본부장은 “질책을 어려워하시는 것 같아 오히려 아쉬웠다”고 말했다.

오 처장은 “여성의 감성적 특성이 고객 관계를 부드럽게 이끌지만 충고하고 질책하는 상사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질책에 방어적이면 승진을 막는 유리천장에 이어 ‘이중 유리천장’을 만드는 셈이라는 얘기다.

오 처장은 “저녁에 남녀가 만나는 건 불편하니 거래처와 만나지 않겠다는 여자 후배를 본 적이 있다”며 “스스로 발전을 못하게 옭아매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 여성 대통령 시대는 기회

“박 대통령이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돼 여성들에겐 큰 롤모델이 됐어요. 여성 대통령이 나온 마당에, 이제 여성이라고 안 되는 일은 없는 것이죠.”(오 처장)

“여성 처장, 부행장이 나와서 여성들에게 막연했던 길이 구체화되고 명확해졌어요.”(노 부장)

이들은 ‘유리천장’을 느끼는지 묻는 질문에 오히려 식상하다는 반응이었다. 여성 대통령 시대를 맞아 회사가 여성 인력에게 주목하고 있으므로 여성 리더십에 기회가 왔다는 얘기다.

실제 KB국민은행, IBK기업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외환은행, 하나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 6곳의 본부장 및 임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박 대통령 취임 전인 지난해 11월 4.3%였다가 올해 9월 현재 5.6%로 소폭 올랐다.

○ 남녀 소통을 막는 유리벽이 ‘위협 요인’

여성 리더 시대에 다가온 위협 요인은 위를 가로막는 ‘유리천장’이라기보다는 남녀 직원 간 소통을 막는 ‘유리벽’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여성은 감성적이고 과정을 중시하는데 남성은 성과와 결과를 중시하므로 업무 및 소통 방식이 다르다는 것. 이들은 여성 리더 시대의 과도기 속에서 힘들어하는 남성 후배에게 여성 상사 모시기 팁도 소개했다.

박 센터장은 얼마 전 업무 지시를 받은 남자 후배가 “아, 이걸 다 합니까?”라고 물어서 감정이 상했다. 반면 업무를 줄이거나 변경해야 하는 이유를 자료나 메모로 설득하는 후배는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업무 지시에 직답을 하는 것보단 시차를 두고 고민해본 뒤 차근차근 정리해 자료와 데이터로 말하면 ‘이 사람이 일을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는구나’ 생각하게 되죠.”

노 부장은 숫자를 꼼꼼하게 챙겨보는 여성 상사들의 특성을 보고에 반영하길 권했다.

“예를 들어 소비자 민원 데이터를 보고받으면 민원 현황 외에 과거 데이터를 추가했으면 해요. 수치를 비교해서 넓은 시각에서 보고서를 이해하고 싶거든요.”

오 처장은 “아직 여성 상사와 일을 안 해본 사람이 많으니 여성들이 많이 노력해야 한다”며 “어떨 땐 형처럼 터프하게, 어떨 땐 누나처럼 다정다감하게 강약을 주며 후배들을 대하면 좋다”고 조언했다.

:: SWOT분석 ::

기업 내부의 강점(Strength) 및 약점(Weakness), 외부환경의 기회(Opportunity) 및 위협(Threat)을 두루 따져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기법이다.

조은아·한우신 기자 achim@donga.com
#소비자보호 업무#마더십#여성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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