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발레 하는 수녀가 되고 싶은 장애소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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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하는 수녀님/원유순 지음/215쪽·1만1000원/동아일보사

근육 힘이 약해 걷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아이가 있었다. 갓난아기 때는 삼키는 기능이 약해 우유 10cc를 마시는 데 한 시간이나 걸리고, 사시와 고도난시로 지금까지 받은 눈 수술만 한두 번이 아니다. 코앞에 있는 사물을 보기 위해 두꺼운 렌즈가 달린 안경을 껴야 하는 지윤이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장애인이다. 그런 지윤이가 어느덧 졸업을 바라보는 대학교 3학년 처녀로 훌쩍 자랐다.

어렸을 적 지윤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했던 것은 발레. 하지만 발레를 배우는 과정은 스스로의 한계는 물론이고 세상의 편견을 뛰어넘는 과정이었다. ‘장애아가 다니는 학원에 내 아이를 보낼 수 없다’는 차별, ‘가정 형편을 생각하면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장애아가 뭘 할 수 있겠느냐’는 편견과 맞서며 지윤이는 남들보다 몇 배, 몇십 배 노력했다. 그리고 지난겨울 지윤이는 평창 스페셜올림픽 개막 공연에서 멋진 발레 공연으로 전 세계에서 온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대학생 지윤이의 일상은 여느 대학생의 일상과 다를 바 없다. 좋은 학점을 받으려고 열심히 강의를 듣고, 컴퓨터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도 하고, 틈나는 대로 보육교사인 엄마 일을 돕고 아르바이트도 한다. 주말마다 성당에 나가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는 지윤이의 꿈은 수녀님이다. 정확히는 발레하는 수녀님이다.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으로 발레를 즐기고, 발레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즐겁게 춤을 추는 수녀님이다.

이 책은 일견 장애를 ‘극복’하고 무언가를 성취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삶이 품은 다양한 가능성에 도전을 멈추지 않은 한 소녀와 그의 든든한 울타리가 돼 준 가족에 대한 헌사다. 작고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지윤이가 꼭 필요한 곳에서 행복하게 웃음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지윤 엄마의 목소리는 아이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오늘의 세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책 중간중간 삽입된 지윤 엄마의 편지와 일러스트 작가 장경혜 씨의 삽화도 읽는 이들의 마음에 온기를 더한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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