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前 만남엔 공감… ‘국정원 메뉴’ 신경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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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朴대통령 ‘국회서 3자회동’ 제안… 민주당, 원칙적 수용

청와대 실무진은 야당과의 회담 제안 시점을 해외 순방 성과의 여운이 남아 있는 12일보다는 13일이나 16일이 적당하다는 의견을 대통령에게 올렸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12일 오전 전격적으로 3자회담을 야당에 공식 제안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나는 것을 국민이 원하고 있는 이상 추석 전에 빨리 만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담 제안에만 서두르다 보니 민주당과 충분한 조율을 거치지 않고 발표해 야당의 반발을 사는 미숙함도 보였다.

○ 순방 기간에 결심 바꾼 대통령

박 대통령은 지난달 6일 여야 대표 및 원내대표가 참석하는 5자회담을 제안한 이후 회담 형태를 고수해 왔다.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과 관련해 민주당에 줄 것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회담 때 얼굴만 붉힐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4일 해외 순방 출발 전만 해도 이런 생각에 변함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순방 기간 내내 회담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여러 통로로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가장 적극적인 건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다. 정기국회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총책인 최 원내대표는 직간접적으로 회담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청와대 정무라인에서도 순방 기간 동안 복귀 후 회담 제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며 다양한 형태와 의제를 시나리오 형태로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순방 외교에서 성과를 얻은 만큼 귀국 후 야당을 보듬어야 한다”는 언론 보도들도 대통령의 결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순방 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최종 결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무라인의 제안 중에는 관행대로 5부 요인을 청와대로 초청해 해외 순방 성과를 보고한 뒤 3자회담을 하는 안도 포함돼 있었으나 대통령은 국회를 직접 찾아가는 방안을 선택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대선 때 ‘국회를 자주 찾아가겠다’고 한 공약을 잊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도 해외 순방 보고를 국회에서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민주당이 회담을 거부하더라도 예정대로 국회를 방문해 국회의장단에 순방 성과를 보고할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의 결심에는 정기국회 때 예산안과 민생법안 처리를 위해 야당의 협조가 불가피한 점, 여당 내에서조차 박 대통령의 소극적인 태도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점 등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 만나더라도 산 넘어 산

회담 성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어떤 의제가 논의될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당은 박 대통령에게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사과와 진실 규명 △관련 책임자 처벌 △국회 주도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국정원 개혁에 대한 민주주의 회복 방안이 회담의 주의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민주당에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회담을 제안하며 “(회담 내용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야당 지도부와의 회담만 끝나면 제기됐던 ‘빅딜설’, 즉 야당과 서로 주고받기를 할 거라는 의구심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양자가 아닌 3자회담을 제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까지 야당이 요구한 것 중에는 들어줄 수 있을 만한 게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전 정권 일에 대해서 사과를 하거나 국면 전환용으로 에둘러 유감을 표명할 의사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국정원 개혁의 의지와 방향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회담에서 야당 지도부가 합리적인 요구를 하면 적극 수용하겠다는 생각”이라며 “국회가 결정할 몫인 특위 구성까지 확답은 못하더라도 국정원이 개혁안을 내놓으면 국회에서 잘 논의해 달라는 정도의 언급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새누리당도 민주당의 원내복귀 명분 마련을 위해 국회 내 국정원 개혁 특위 구성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 민주당의 고민

민주당은 청와대 제안을 받고 원칙적으로는 수용하지만 진의 파악을 먼저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회담 제안을 받고 박 대통령이 국정원 개혁 문제를 의제로 여기고 있는지를 물었으나 “윗분의 지시를 받은 것만 말한다. 의제는 지시받은 바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조찬회동에서 최경환 원내대표에게 양자회담이 원칙이고 의제에 국정원 개혁이 포함돼야 한다는 뜻을 전달했는데 김 비서실장은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제안만 통보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도부 내에서 “대통령이 국회까지 오겠다는데 거부할 명분은 없지 않으냐”는 의견이 나오면서 내부에서 밤늦게까지 밀고 당기기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의 무례함과 불통은 지적해야 하지만 우리가 회담을 계속 튕긴다는 이미지를 줄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고민의 뜻을 밝혔다.

동정민·고성호·윤완준 기자 ditto@donga.com
#청와대#야당 회담#박근혜 대통령#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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