攻守 뒤바뀐 ‘역사’ 논쟁… 교육청까지 교과서 채택 거부운동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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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논란 확산

교육부가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전면 수정, 보완한다고 밝혔지만 교학사 교과서를 둘러싼 공방은 오히려 가열되고 있다. 광주시교육청과 일부 단체 등이 교학사 교과서의 검정 취소 요구에 가세하면서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불채택 운동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 불채택 운동으로 확산

광주시교육청은 12일 ‘교육부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 수정 보완 방침에 대한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내고 일선 학교에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지 말도록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광주시교육청은 “교학사 교과서는 일본의 식민지배 역사를 왜곡하고 이승만 독재정권과 5·16 군사 쿠데타를 미화하는 등 교과서로 매우 부적절해 검정을 취소해야 한다”면서 “이번 논란을 계기로 역사 교사들을 상대로 한 연수를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광주시의회는 역사교과서 검정 합격 취소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교육 역사 사회 분야 465개 단체로 구성된 ‘친일독재미화 뉴라이트 교과서 무효화 국민네트워크’는 이날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교학사와 뉴라이트대안교과서의 퇴출 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도 이날 교학사 교과서의 검정 취소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유족회는 제주도는 물론 전국의 학교 현장에서 이 교과서가 쓰이지 않도록 불채택 운동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대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중에서 교학사만을 겨냥해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일부의 오류를 침소봉대하거나 기술 내용을 자신만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비판하는 것을 넘어 검정을 취소하라는 주장은 결국 이념적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교총은 “이념 성향에 따라 내용이 자의적으로 해석돼 교과서가 정치적 도구로 전락해선 안 된다. 교과서를 둘러싼 이념대결 논란은 국민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학사 측은 이념 논란에 휩싸이는 것이 부담스럽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협박에 시달려 출판을 아예 포기하고 싶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집필자 동의가 없으면 출판 포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교과서는 출판사와 집필자가 발행권을 공동으로 갖고 있어서 양측이 합의하지 않는 한 수정이나 발행 중단을 할 수 없다.

교학사 관계자는 “부서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욕을 하는 전화가 많이 와 직원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엄청나게 받고 있다”면서 “너무 시달리다 보니까 발행을 포기하자는 말도 나오고 있지만 규정이 굉장히 복잡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11일에는 교학사 사장실에 3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수차례 전화를 걸어 “회사 근처에 있다가 목을 따 버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 5년 만의 역사 교과서 논란 재연

역사 관련 교과서가 검정 과정에서 도마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정부가 10년간 좌편향된 역사교육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밝힌 뒤 보수 우파 단체들이 금성출판사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이라며 집중 공격한 적이 있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와 금성출판사, 집필진, 좌파 단체들이 이 교과서를 수정할지를 놓고 1년 가까이 공방을 벌였다. 마침내 교과부는 금성출판사를 비롯한 6종의 근현대사 교과서 출판사에 직권으로 편향된 내용의 수정을 명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이후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 집필진이 금성출판사를 저작권 침해 등으로 고소해 4년 가까이 소송전이 벌어진 끝에 올해 4월 대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5년 만에 재연된 한국사 교과서 논란은 공수(攻守)의 진영만 뒤바뀐 모양새다. 이번에는 민주당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일부 좌파 진영이 교학사 교과서가 우편향이라며 논란의 불을 지폈다.

두 사례 모두 다툼의 원인은 역사교육의 이념성이다. 다만 논란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2008년에는 검정 교과서 수정 가능성을 둘러싼 법리 싸움이, 이번에는 사실 오류와 자료 표절 등 검정 시스템의 허점에 대한 비판 등이 추가됐을 뿐이다.

하지만 본질은 양 진영이 서로 다른 역사관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팩트 오류는 바로잡되 역사관 문제는 검정 기준에 부합하는지 따진 뒤 일선 학교가 자율적으로 채택하도록 맡기는 것이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김희균·신진우 기자 foryou@donga.com
#교학사#한국사 교과서#한국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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