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사령관에 지휘권… 나는 5·18관련 죄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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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계엄사령관 이희성씨

5·18민주화운동 유혈 사태 때 당시 계엄사령관으로 최고 지휘권자였던 이희성 전 육군참모총장(89·사진)은 10일 경기 과천시 갈현동 자택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나는 직책상 책임이 있어 기소됐던 것일 뿐 5·18과 관련해 죄가 없다”며 “그때 지휘권은 윤흥정 전교사령관이나 후임인 소준열 전교사령관에게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총장은 “당시 내가 일선에서 지휘하지 않았다. 참모들이 다 결정을 하고 형식상으로 내가 결재해서 승인을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휘관인 내가 책임을 회피할 수 없기 때문에 책임을 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총장은 1996∼1997년 진행된 ‘12·12, 5·18 재판’ 당시 내란주요임무종사, 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지만 8개월만 복역하고 특별 사면됐다.

이 전 총장은 “당시 최규하 대통령에게 다 보고하고 명령 받아서 한 거다. 난 복권은 됐지만 연금도 못 받고 있다”며 억울해 했다. 그는 “우리가 기소될 당시 이미 5·18 범죄 관련 공소시효가 지나서 처벌 받지 않아도 됐지만 김영삼 정권이 특별법을 제정하는 바람에 복역했다”며 “그럼에도 8개월을 살았고 법에 따라 사면된 것이니 죗값은 다 치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추징금을 완납하기로 한 것에 대해선 “명예가 다 떨어진 다음에야 추징금을 내는 모양새가 보기 좋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검찰이 (전 전 대통령을) ‘해골’로 만든 만큼 해골에 옷도 입혀 줘야 한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줄 수 있는 도량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이희성 씨 인터뷰 일문일답 ▼

"나는 5·18과 관련해 죄가 없소. 당시 내가 가장 윗선에 있어 형식상 (유혈진압을) 결제하고 승인했을 뿐 실제로는 일선 참모들이 결정한 것이오. 지휘 체계상 내가 책임지지 않을 수 없어 기소된 것일 뿐이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 최고 지휘권자였던 이희성 전 계엄사령관(89·당시 육군참모총장 겸임)은 5·18이 일어난 지 33년이 지난 지금도 유혈진압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이 전 계엄사령관은 지난달 12일과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이 추징금 완납 계획을 밝힌 10일 경기 과천의 자택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두 차례 만나 이 같이 밝혔다. 이 전 계엄사령관은 5공화국 시절 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그는 1980년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돼 사실상 신군부가 입법·행정·사법 등의 권한을 모두 쥐게 됐을 당시 대통령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졌던 인물이다. 그는 신군부 가장 윗선에서 공수부대 증파를 지시하고 발포 명령 등의 유혈진압을 최종 승인하는 등 지휘권을 휘둘렀음에도 "(유혈진압은) 최규하 대통령에게 다 보고하고 명령을 받아서 한 것인데 어떻게 내게 죄가 있느냐. 실질적인 지휘 책임은 현지 지휘관이었던 윤흥정 전투병과교육사령관이나 후임인 소준열 전교사령관(1980년 5월 22일 부임)에게 있었다"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했다. 이 전 총장은 1996~1997년 진행된 '12·12, 5·18 재판' 당시 내란주요임무종사, 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로 전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 등과 함께 기소돼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지만 8개월만 복역하고 특별사면 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 전 대통령 등 '12·12, 5·18 재판'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 14명 모두 복역 8개월만에 특별사면됐다. 이 때문에 '5공이 제대로 청산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가 기소될 당시 이미 5·18 범죄 관련 공소시효가 지나서 처벌 받지 않아도 됐지만 김영삼 정권이 특별법을 제정하는 바람에 복역했다. 그럼에도 8개월을 살았고 법에 따라 사면된 것이니 죗값은 다 치렀다. 전 전 대통령이 추징금을 완납키로 한 만큼 형식적으로는 5공이 모두 청산됐다고 본다."

-당시 핵심 피고인으로 기소된 것에 대해 억울한 점이 있나.


"내 자리는 책임지라고 만들어놓은 자리였다. 계엄사령관은 전권을 가진 막강한 지위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장 진압 지휘를 총 지휘관인 내가 다 한 것은 아니다. 참모들이 현장 상황을 보고하고 보고가 크게 잘못되지 않았으면 난 승인을 했다. 그러나 참모들이 그랬다고 해서 내가 책임을 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원통해 할 것도 없다. 팔자가 사나워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사건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 중에서 계급이 상대적으로 낮아서 기소가 안 된 사람도 많다."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에 대한 정상적인 상부 지휘라인은 이희성 계엄사령관-진종채 2군사령관-윤흥정 전투교육사령관-정웅 31사단장-각 공수부대 여단장이었다. 그런데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상 지휘체계를 거스르고 정호용 특전사령관을 통해 광주 유혈진압을 직접 지휘하며 계엄사령관(최고 지휘권자) 역할을 한 정황이 곳곳에서 증명되고 있다. 당시 검찰 공소장과 판결문에도 이 사실이 적시돼 있는데….


"전두환은 5·18에 관한한 책임이 없다. 당시 보안사령관으로 광주와 아무런 관련이 없던 전 전 대통령이 정상 지휘체계를 무시하고 5·18에 개입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소위 '좌파'들이 전두환을 끌어들이려하다 보니 '지휘체계가 이원화 됐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만약 전 전 대통령이 지휘체계를 이원화해 배후에서 직접 지휘를 했다면 그건 군법회의(현재 군사재판)에 붙일 엄청난 사안이다. 전두환이 지휘 이원화를 했다면 계엄사령관인 내가 가만히 있었겠나. 전두환은 내게 까마득한 후배다. 그는 내게 불경스럽거나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8개월간 복역했다. 당시 나이가 73세로 복역 생활이 어려웠을 것 같은데….


"잘 지냈다. 교도소 측에서 젊은 죄수들을 당번처럼 내 옆에 붙여줘 수발을 들게 했다. 교도소 내에 의사가 있는데 그 분이 나를 자기 방에 매일 데려다놓고 건강상태를 확인해줬다. 커피도 매일 대접받았고 밖에 못나간다 뿐이지 교도소 밖에서와 다를 것 없는 생활을 했다. 나는 그곳에서 '고등관'처럼 지냈다. 7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교도소 내에 곧 사면된다는 소문이 돌아서 곧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었다."

-전 전 대통령을 언제 마지막으로 만났나.


"4, 5년쯤 전 전 대통령이 우리 부부를 연희동(전 전 대통령 자택)으로 불러 갔다. 당시 그가 '연금을 못 타게 돼서 미안하다'라며 저녁을 대접하더라. 내가 실형 선고를 받는 바람에 군인연금도 못 받고 있다. 죄가 없는데도 연급을 못타는 것이다. 그것도 억울한데 6.25 참전용사 관련 연금도 실형 선고를 이유로 받지 못하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이 잊지 않고 불러줘서 고마웠다."

-전 전 대통령이 추징금을 완납하겠다고 발표했다.


"미리 내면 보기 좋았을 것을 망신은 망신대로 당하고 명예는 다 떨어지고 길에 나 앉게 될 상황이 되니까 완납하겠다고 하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 우리(신군부 주축 세력) 중에 전 전 대통령이 '29만 원밖에 없다'고 했을 때 믿는 사람은 없었다. 거짓말을 하는 모습이 뻔뻔해보여서 미움을 산 거다. 검찰이 전 전 대통령을 '해골'로 만들어 놨다. 원칙대로 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그러나 검찰은 자신들이 해골로 만든 사람에 대해 옷도 입혀줘야 된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줄 수 있는 도량이 있어야 한다."
#5.18 민주화#민주화운동#이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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