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은 여전한데… ‘낙지 살인’ 무죄 확정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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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강제로 질식 결정적 증거 없어” 거액 보험금 탄 남친 절도죄만 인정
유족 “딸의 恨 어떻게 풀어주나”

이른바 ‘낙지 살인 사건’으로 불리며 1심 유죄에서 2심 무죄로 뒤집혀 논란을 빚었던 사건이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으로 막을 내렸다.

12일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낙지를 먹다 질식사한 것처럼 꾸며 거액의 보험금을 타낸 혐의(살인 등)로 구속 기소된 김모 씨(32)의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김 씨는 1심에서 살인 혐의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심에서는 살인 혐의에 대한 직접 증거가 부족하고 간접 증거만으로는 혐의가 명백히 증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법원 역시 살인 혐의에 대해 2심 재판부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다만 살인 사건과 관계없는 차량 절도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간접 증거만으로는 김 씨가 피해자를 강제로 질식시켰다는 공소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김 씨의 주장이나 변명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더라도 결정적 증거가 없이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은 형사재판의 기본 명제”라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 낙지가 범인? 엇갈린 법원의 판단

검찰은 2010년 4월 19일 새벽 인천 남구 주안동에 있는 한 모텔에서 김 씨가 여자친구 A 씨(당시 21세)와 술을 마신 뒤 산낙지를 먹다가 질식사한 것처럼 우발적인 사고를 가장해 A 씨를 살해하고 사망 보험금 2억 원을 챙긴 혐의 등으로 김 씨를 구속 기소했다.

지난해 10월 1심 재판부는 “모텔 종업원의 증언에 따르면 사고 직후 발견된 A 씨는 평온한 표정으로 잠을 자듯 하늘을 향해 반듯하게 누워 있었는데 A 씨가 질식할 정도로 호흡 곤란을 느꼈다면 고통으로 괴로워하며 강하게 몸부림쳤을 것”이라며 “A 씨의 치아 상태가 좋지 않아 산낙지같이 씹기 힘든 음식을 제대로 자르지도 않고 먹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와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비록 질식에 의해 A 씨가 숨졌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A 씨가 낙지를 먹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점, 살해 동기로 꼽힌 보험계약 내용이나 보험료 등에 관한 내용을 김 씨가 자세히 알고 있지 못했던 점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현장에서 발견된 낙지는 A 씨가 무심결에 입에 넣을 경우 충분히 삼킬 수 있는 크기였고, A 씨의 치아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A 씨가 지인에게 낙지를 먹으러 가자고 했던 적이 있는 점으로 미뤄 볼 때 낙지를 먹지 않았다고 단정할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 풀리지 않는 의문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고 전후 상황에 대해 명쾌히 설명되지 않는 점이 많다. 특히 A 씨의 보험 가입일과 보험금 수취인 변경일이 사고 시점과 맞아떨어지는 게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A 씨는 김 씨의 권유로 2010년 3월 25일 보험에 가입했다. 김 씨는 같은 해 4월 12일 계약 변경에 필요하다고만 A 씨에게 말한 뒤 서명과 사인을 받아 보험금 수취인을 김 씨로 변경했다. 그 뒤 A 씨는 일주일 만인 19일 모텔에서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사 상태에 빠져 5월 5일 숨졌다. 김 씨는 A 씨가 병원에서 생사를 다투고 있었던 4월 21일 자기 이름으로 통장을 개설했다. 김 씨는 A 씨가 숨진 지 8일 만인 5월 13일 보험금을 청구해 같은 해 7월 23일 보험금 2억 원을 받아 갔다.

사건 전후 김 씨는 A 씨를 포함해 약혼녀 B 씨, 다른 여성 등 총 3명과 동시에 교제하고 있었다.

○ 반발하는 여론

김 씨의 무죄가 확정되자 A 씨의 유족은 강하게 반발했다. 피해자 아버지(50)는 “이제는 법도 못 믿겠다”며 “살인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보여줘야 유죄가 되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서 “재판부를 제외한 모두가 살인자로 한 사람을 지목하고 있다”며 “딸의 한을 풀어줄 방법을 찾겠다”고 덧붙였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낙지 살인사건#낙지살인 무죄판결#낙지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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