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끝내달라는 말기암 아버지를 아들이 가족들 보는 앞에서 끝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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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후 “나도 죽어야” 뛰쳐나가… 자살 우려한 가족 신고로 범행 드러나

뇌종양 말기 환자인 아버지와 고통을 보다 못한 가족들의 요청에 아버지를 목 졸라 숨지게 한 아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 포천경찰서는 12일 아버지(56)를 살해한 혐의(존속살해)로 이모 씨(27·회사원)와 큰누나(29), 어머니 이모 씨(55)를 붙잡아 조사 중이다. 아들 이 씨는 8일 오후 3시 30분경 포천시 일동면 큰누나의 집에서 어머니와 큰누나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다.

이 씨는 아버지 장례를 마친 11일 오후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며 술을 마시다 큰누나와 다툰 뒤 밖으로 나갔다. 이 씨는 이날 오후 10시 30분경 가평에 사는 작은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은 엄마와 누나가 설득해 내가 아버지를 죽게 했다. 괴로워 미치겠다. 나도 죽어야겠다”고 말했다. 이 씨의 작은 누나는 큰누나 집으로 찾아가 “아무리 아버지가 원한다고 해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느냐”며 항의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작은 누나는 동생이 자살할까 봐 112에 신고했고, 경찰은 큰누나 집 가까운 저수지 근처에서 이 씨를 발견했다. 저수지에서 내려오던 이 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만나 자신의 범행을 털어놓았다. 경찰 조사 결과 경기 시흥의 한 공장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이 씨는 범행 당일 부모를 모시고 살던 큰누나가 불러서 갔다가 범행 제의를 받고 “못 하겠다”고 여러 차례 거절하다 결국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씨의 부모는 큰누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다 뇌종양 선고를 받은 뒤 큰딸 집에서 보살핌을 받아왔다.

숨진 아버지는 지난해 12월 ‘길어야 8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약물치료를 해왔지만 엄청난 고통에 괴로워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버지는 유서를 남기지 않았고 수차례 함께 사는 큰딸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부탁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날 아들 이 씨에 대해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어머니(살인)와 큰누나(존속살해)는 불구속 입건했다.

포천=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아버지#존속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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