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봉의 피칭 X파일] 류현진, 라이벌에 슬라이더 그립 묻는 ‘학구파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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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9월 13일 07시 00분


최고의 투수는 최선을 다해 배운다. LA 다저스 류현진은 SK 성준 투수코치, 한화 송진우 투수코치, KIA 윤석민, SK 김광현 등 선후배에게 망설임 없이 슬라이더 그립을 배웠다. 사진|동아닷컴DB·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
최고의 투수는 최선을 다해 배운다. LA 다저스 류현진은 SK 성준 투수코치, 한화 송진우 투수코치, KIA 윤석민, SK 김광현 등 선후배에게 망설임 없이 슬라이더 그립을 배웠다. 사진|동아닷컴DB·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
■ 피칭의 A to Z

Learning…최고의 선수는 늘 배운다
류현진, 김광현·윤석민 등에 직접 조언 구해

Dedication…능력 향상 위한 헌신
배영수, 늦깎이 너클볼 장착은 희생의 결과

Warrior…전사로 변신하는 선수
ML 페드로 마르티네스·로저 클레멘스 등 유명


투수가 공을 던져야 야구는 시작된다. 투수는 능동적 자세를 취하게 되고, 타자는 수동적으로 반응한다. 동료들은 수비를 하고 있지만, 투수는 마운드에서 타자를 공격한다. 그러나 많은 투수들이 경기를 이끌어가지 못하고 끌려 다닌다. 알고 있는 지식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전적으로 선수의 몫이다. 피칭은 멘탈 게임이다. 피칭은 복잡한 것도 아니고, 복잡해서도 안 된다. 피칭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투수 자신일 뿐이다. 알파벳순으로 투수가 지녀야 할 마음과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정리해본다.

● Adversity(역경)

투수에게는 늘 역경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불리한 상황은 도전해야 할 과정일 뿐이고, 역경을 이겨낸 사람만이 인정받는다. 득점권에서 매우 낮은 피안타율을 자랑하는 두산 유희관은 위기에서 흔들리지 않고 해결책을 가장 잘 찾아내는 투수다.

● Body Language(신체언어)

투수가 경기 중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았을 때 좌절감이나 분노,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삼성 오승환의 별명 ‘돌부처’는 그래서 멋지다.

● Competitor(승부사)

투수들은 다른 투수가 지닌 ‘터프한 승부사’의 모습을 부러워한다. 승부사는 투수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진정한 승부사는 자신의 무기가 잘 먹히지 않을 때 이겨내는 투수다. 자신의 공이 좋지 않은 날 쉽게 무너지는 투수는 승부사라고 할 수 없다.

● Dedication(헌신)

야구장에서 최고의 공을 던지고 싶다면 희생을 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당장의 편안함을 피하고 장기적 결실을 맺을 수 있는 행동을 택해야 한다. 삼성 배영수는 올해 너클볼을 던진다. 몸과 마음을 다해 노력한 결과다.

● Excuse(핑계)

핑계는 자신에 대한 비난을 물리치기 위함이다. 핑계를 대는 투수는 인정받지 못한다. 핑계는 자신감이 없고 용기가 없는 투수들이 하는 일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핑계보다는 실수를 인정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 First Inning(1회)

많은 선발투수들이 “1회가 힘들다”고 한다. 첫 타자부터 공격적이지 못하고 탐색전을 펴기 때문이다. ‘오늘 내 공이 어떤가’를 확인하고 난 뒤 전략을 짜는 투수들이 많다. 선발투수는 1회 첫 타자부터 공격적으로 던져야 한다.

● Goals(목표)

막연히 최선을 다하고 팀이 승리하는 게 투수의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 투수는 자신의 발전을 이끌어줄 목표를 세워야 한다. 예를 들면 ‘주자견제능력을 발전시킨다’,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을 70%%로 만든다’, ‘3루쪽 번트 타구 처리를 완벽하게 한다’와 같은 것들이다.

● Habits(습관)

투수는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음식을 먹는 습관, 잠자리 습관, 훈련할 때의 좋은 습관이 하나의 패턴을 만들어 피칭에 도움을 준다.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은 ‘습관이 인생 전체를 좌우한다’고 했다.

● Intelligence(지능)

영리한 생각은 투수를 위기에서 구해주고, 그렇지 못한 생각은 투수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투수는 지능적인 생각 없이 결코 좋은 피칭을 할 수 없다. 사람의 행동은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가장 지능적인 피칭은 지금 던지는 공 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 Joy(기쁨)

“몇 대 몇이에요?”

“15대0이요.”

“아이고, 어렵겠네요.”

“괜찮아요. 아직 지지 않았어요.”

사회인야구 외야수는 진지했다. 또 야구를 하는 게 무척 즐거워보였다. 피칭이 매순간 즐겁고 행복하다면, 그보다 더 값진 일은 없을 것이다.

● K’s(삼진)

삼진은 결과일 뿐이다. 삼진을 잡는 투수들은 대부분 공격적이다. 그들은 유리한 볼카운트로 타자를 앞서가며 최고의 결정구를 던진다. 삼진으로 잡든, 범타로 잡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유리한 볼카운트를 만들어가는 것이 모든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 Learning(학습)

최고의 투수는 최선을 다해 배운다. LA 다저스 류현진은 슬라이더를 배우기 위해 송진우(한화 코치), 성준(SK 코치), 김광현(SK), 윤석민(KIA) 등 많은 투수들에게 그립을 물었다. 배운다는 것은 변화를 의미한다.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실패는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 Mantra(주문)

투수는 자꾸 긍정적 주문을 외워야 한다. 긍정적 주문을 외우면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부정적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다. ‘땅볼을 유도하자’, ‘낮은 스트라이크를 던지자’와 같은 주문은 매우 중요하다. 주문을 외우면 주문처럼 된다.

● Negativism(부정주의)

부정적 생각을 하는 투수들이 있다. 상황이 좋아도 ‘설마 계속되겠어’라며 확신을 갖지 못한다. 생각을 바꾸면 피칭의 질이 달라지고 삶도 바뀐다. 부정적 생각을 긍정으로 바꿀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 Outs(아웃)

야구는 2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게임이다. 점수차와 관계없이 매순간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 투아웃 이후 자칫 느슨해지면 순식간에 빅이닝이 찾아올 수도 있다. 2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을 때까지는 결코 이긴 게 아니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Pressure(압박감)

위기가 오면 투수는 누구나 압박감을 느낀다. 현명한 투수들은 그 순간 자신의 생각이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이라고 믿는다. 압박감을 느낄 때는 마운드에서 한걸음 물러나 호흡을 크게 하고 다음 공을 어떻게 던질지 정확하게 결정한 다음 마운드에 오르자.

● Quitting(중단)

투수는 강판될 때까지 포기해선 안 된다. 포기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마음을 먹는 일이다. 포기하는 투수는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실패하더라도 최선을 다한 투수는 분명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 Result(결과)

괴테는 ‘옮고 현명한 일을 했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결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투수가 아무리 공을 잘 던져도 좋은 결과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난 다음의 결과는 투수가 결코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 Strike(스트라이크)

야구에서 가장 좋은 투구는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일이다. 특히 초구 스트라이크는 성공의 첫 번째 조건이다. 볼넷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던지는 스트라이크는 바람직하지 않다. 카운트 초반에 공격적으로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게 투수가 할 일이다.

● Tempo(템포)

투수는 경기의 흐름에 맞게 템포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템포가 너무 빠르면 위기에서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들게 되고, 템포가 너무 느리면 야수들이 지치게 된다. 그래도 템포가 느린 투수보다는 빠른 투수가 훨씬 낫다.

● Umpire(주심)

“주심 때문에 경기를 망쳤다”는 투수들이 있다. 투수는 주심의 판정이 언제나 정확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 심판의 판정은 투수가 컨트롤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중 하나다.

● Visualization(영상화)

투수에게 정신적 훈련은 매우 중요하다. 등판하기 전날 상대팀과의 대결을 영상화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된다. 효과적 피칭을 영상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자.

● Warrior(전사)

전사는 상대에게 ‘싸우기 위해 왔다’는 강렬한 모습을 심어준다. 전사는 강한 승부욕과 포기하지 않는 집념을 갖고 있다. 과거 메이저리그를 대표했던 페드로 마르티네스, 케빈 브라운, 로저 클레멘스 같은 투수들이다.

● X(엑스)

엑스는 알지 못하는 것으로 정의돼 있다. 투수에게 미래는 알 수 없는 엑스와 같다. 투수에게 과거와 미래는 상관이 없다. 투수는 항상 현재에서 싸워야 한다.

● Yesterday(어제)

인간은 실수를 통해 배운다. 어제를 생각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과거에서 무언가를 배우고자 한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과거에 집착한다면 방해가 된다.

● Zero(제로)

투수에게 제로는 궁극적 목표다. 스코어보드에 제로를 새기는 것은 모든 투수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무실점은 결과일 뿐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 한번에 공 하나씩 단순하게 생각하고 던지는 것이 스코어보드에 많은 제로를 새겨 넣는 방법이다.

스포츠동아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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