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돈 받으니 고맙긴 한데, 더 낳을 생각은 안듭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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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보육 어떻게 풀 것인가]<중> 아이 둘 키우며 양육수당 받고 있는 여기자 체험기

노지현 오피니언팀 기자
노지현 오피니언팀 기자
매달 25일, 제 통장에는 회사에서 주는 월급 이외에 구청에서 주는 돈이 25만 원 들어옵니다. 6세 딸과 3세 아들에게 각각 10만 원, 15만 원 나오는 ‘양육수당’입니다. 지난해까지는 소득 하위 15%가 지원받아 서울 지역에 사는 저 같은 대부분 맞벌이 부부는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올 3월부터 전면 무상보육이 시행되면서 새로운 ‘수입’이 들어온 지 벌써 6개월이 넘습니다. ‘공짜 돈’을, 그것도 나라에서 주는 돈을 매달 받게 되니 마음이 미묘하게 변해 갔습니다.

제가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를 하던 지난해 초만 하더라도 전면 무상보육은 ‘독이 든 사과’라며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재원은 생각하지도 않고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내놓은 전략’이라는 기사를 열심히 썼습니다. 하지만 돈의 마법(^^) 앞에 여자는 한없이 약해지는가 봅니다. 막상 제가 수혜자가 되고 보니 매달 25일이 다가오면 들어올 돈만 믿고, 인터넷에서 어린이 뮤지컬 스케줄을 검색해 보고 새로 생긴 키즈카페 비용이 얼마인지 알아보기도 하니 말이지요. 둘째 기저귀를 좀 더 고급 브랜드로 바꿀까 생각도 해봅니다.

세금 내주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렇게 나라에서 돈을 주신다고 해서 셋째를 낳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요즘 저는 마음이 불편합니다. 무상보육 재원이 없다며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전국시도지사협의회에서 하는 아우성이 절대 그냥 ‘앓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올해에는 없는 예산을 추경으로 해결한다 해도, 내년 또 후년에도 재정 부담은 계속될 것입니다. 예산은 ‘빤하고’ 무상보육은 한다고 했으니 아랫돌 빼 윗돌 괴는 식으로 아마 내년에는 장애인 정책에 쓰던 돈을 뭉텅 자르거나 저소득층 아동 방과후교실에 쓰려던 예산을 없애 무상보육 재정으로 쓸지 모릅니다.

물론 양육수당을 받고 있는 상당수 부모들은 “외국에 비하면 아직도 금액이 적다” “남들 다 받는데 나만 제외당하면 더 기분 나쁘다”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내 아이는 조만간 초등학교 들어갈 테니까 그때까지만 재정을 박박 긁어서 쓰면 된다’는 생각! 혹시 없으신가요?(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양육수당은 끊깁니다)

전면 무상보육이 실시되고 있긴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다달이 부모들에게 쥐여주는 돈 때문에, 문제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습니다. 이제 뭔가 주장을 하려면 ‘옛날에는 이나마(돈)도 없었어. 돈 받아놓고 왜 그래?’라는 말을 들으니까요.

지난주, 여자 동창생 네 명이 저희 집에 모였습니다. 대부분 결혼 4∼7년차 30대 중반입니다. 이 또래 여자들은 임신과 출산을 겪는, 진짜 ‘질풍노도의 시기’입니다. 안타까웠던 점은 공부 잘하고, 좋은 직장을 간 친구 순서대로 직장을 모두 그만뒀다는 것이었습니다. 굴지의 대기업을 다녀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던 A는 아이 둘 때문에 상사에게 “유연근무제를 신청해도 되겠냐”고 물었다가 거절당했다고 했습니다. 그 회사는 밖으로는 ‘여사원들의 유연근무제와 재택근무를 장려한다’고 홍보하는 곳이었지만, 중간관리자는 아예 신청서를 내보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A의 업무 공백을 메꿀 길이 없는 상사의 입장도 백분 이해가 가긴 합니다.

업무 특성상 야근이 잦았던 친구 B의 친정어머니는 손주들이 어린이집을 갔다 온 후 딸이 퇴근할 때까지 양육을 맡아주었지만, 점점 심신이 지쳐가자 “네가 회사를 그만두면 좋겠다”고 간곡하게 부탁해 친구는 사직서를 내고 말았습니다.

육아는 결코 돈으로 해결되지 못합니다. 가사노동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청소 빨래야 안 하면 그만이지만 육아는 그렇지 않습니다. ‘24시간 어린이집’을 만들면 워킹 맘들이 편하게 일할 것이라 하지만 잘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어른들도 집 밖에서 자면 불편한데 아이들은 오죽할까요. 부모 편하자고 아이를 24시간 맡겨놓으면 아이가 어린이집에 질려버려 아침에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으며 울어대는 경험을 한 집이 주변에 한둘이 아닙니다.

아이는 되도록 부모가 키우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러려면 아빠들도 육아휴직을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아이를 돌본다는 ‘인식의 변화’와 이를 지원하는 정책이 절실합니다.

이번 전면 무상보육의 최대 수혜주는 누가 뭐래도 어린이집과 유치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을 경우, 생후 12∼23개월은 월 15만 원, 24∼36개월은 월 10만 원이 지급되지만 어린이집에 맡길 경우 각각 34만7000원, 28만6000원이 어린이집으로 지급됩니다. 전업주부들은 종일제가 아닌 시간제로 잠깐 맡기고 싶어도 선택지가 별로 없다 보니 우선 어린이집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립니다. 그러니 워킹 맘들은 대기자 순번에서 계속 밀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육정책을 실시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단지 ‘생산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국가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쳐서? 국민연금을 내줄 청년들이 줄어들까 봐? 아니면 사회 구성원들이 행복하게 자라게 하기 위해서? 목적이 불분명하니 수혜계층은 수혜계층대로 고맙게 생각하지도 않고, 또 세금 내는 사람들은 ‘피땀 흘려 낸 내 세금을 왜 남의 집 자식 키우는 데 쓰느냐’ 불만을 터뜨립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점검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분담해야 하는 미래의 계산서도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노지현 오피니언팀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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