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침대 잠시 잊고… 아빠 엄마와 캠핑 떠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마술처럼 이뤄진 ‘난치병 어린이들의 100가지 소원’
메이크어위시재단 ‘소원 프로젝트’… 현대차, 4년전부터 年 1억원 후원
100번째 선정된 민수 21일 캠핑

충남 서산시에 살던 민수(가명·4)가 아프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건 지난해 3월이다.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장난을 치다가 변기에 머리를 살짝 부딪쳤는데 이마가 많이 부어올랐다. 인근 병원에선 사진을 찍어 본 뒤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민수는 그 길로 충남 천안시 동남구 봉명동 순천향대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악성 수모세포종(소아 뇌종양)입니다. 바로 수술해야 합니다.” 민수 아버지(30)와 어머니(33)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갓 돌이 지난 민수의 여동생(2)도 그날따라 유난히 칭얼댔다.

민수는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어머니는 민수를 돌보기 위해 아예 짐을 싸들고 병원 살림을 시작했다. 서산에 직장이 있던 아버지는 틈만 나면 서울로 달려왔다. 그러나 누구보다 힘든 사람은 민수였다. 밖에서 뛰어다니며 놀아야 할 민수에게 하루 종일 병원 침대에만 누워 있는 것은 참기 힘들었다. 민수는 그해 9월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 국립암센터에서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담당 의사는 암세포가 척수까지 퍼져 최악의 경우 생존 기간이 8개월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다. 아버지는 민수 곁을 지키려고 회사를 그만뒀다. 잠깐씩 짬이 날 때마다 인근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다행히 민수는 항암치료를 잘 버텼다. 아버지는 민수의 몸 상태가 좋아 보였을 때 가까운 바닷가에 데려갔다. 민수는 바닷물을 만져 보기는커녕 차에서 내리지도 못했지만 그때부터 “바다” “바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또 TV에서 아빠와 아이가 함께 여행하는 ‘아빠! 어디가?’ 프로그램이 방영되면 넋을 잃고 봤다.

민수는 병원에 있던 한 사회복지사의 추천으로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과 연결됐다. 이 재단은 2009년부터 현대자동차의 지원을 받아 소아암, 백혈병 등 난치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소원을 들어주는 ‘드라이브 포 위시스(Drive For Wishes)’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민수는 심사를 거쳐 이 프로그램을 통해 소원을 이루는 100번째 어린이로 선정됐다.

민수 가족은 재단의 도움을 받아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난지캠핑장에서 처음으로 캠핑을 할 계획이다. ‘캠핑’이란 단어의 뜻을 잘 모르는 민수는 그저 병원과 집이 아닌 곳에서 엄마, 아빠, 동생과 여러 시간을 보낼 것이란 생각에 한껏 들떠 있다. 10일 오전 척수검사를 받고 한참이나 잠이 들었던 민수는 저녁 무렵에야 정신을 차리곤 또다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우리 몇 밤 자면 캠핑 가?”

재단과 현대차가 함께 소원을 이뤄 준 첫 번째 ‘위시 키드’는 김용범 군(17·대구 달성군 다사읍)이다. 김 군은 10년 전 ‘근이영양증’이 발병해 8년 전부터 아예 걷지를 못한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자동차를 좋아했던 김 군의 소원은 ‘자동차 공장 구경’. 현대차는 2009년 9월 김 군을 충남 아산공장으로 데려갔다. 김 군의 어머니 김금자 씨(50)는 “자동차 공장에 간 게 벌써 4년 전인데 용범이는 그때 추억을 아직도 틈만 나면 얘기한다”고 말했다.

교육방송(EBS)의 ‘방귀대장 뿡뿡이’에 출연하고 싶다는 한 어린이의 소원도 이뤄졌다. 지난해 6월부터 유잉육종(소아암의 일종)으로 투병 중인 박소연 양(4·서울 성북구 돈암동)이 주인공이다. 96번째 위시 키드가 된 소연이는 6월 뿡뿡이 녹화를 무사히 마쳤다. 녹화분은 10일 오전 방송됐다.

현대차는 12일 서울 종로구 계동 사옥에서 드라이브 포 위시스 프로그램 후원 협약식을 열고 재단 측에 1억 원을 전달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2009년부터 재단에 매년 1억 원씩 지원해 왔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소원 프로젝트#난치병 어린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