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인 모델은 재색겸비 알파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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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희 박사 ‘이재관 미인도’ 분석
외모는 기본… 예능-무예도 갖춰

조선 후기 화가 소당 이재관의 작품 ‘여협’의 일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후기 화가 소당 이재관의 작품 ‘여협’의 일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8세기 후반에는 세속적이고 육감적인 여성을 그린 미인도가 유행했다. 혜원 신윤복의 그림이 대표적이다. 19세기로 접어들면서 비현실적으로 이상적인 여성상을 담은 미인도도 더불어 인기를 얻었다. 이는 미인의 기준이 기존 외모 중심에서 재색을 겸비한 여성으로 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고연희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강사(한국미술사·한문학 박사)는 최근 연구모임 ‘문헌과 해석’의 주례발표회에서 ‘이재관이 그린 미인들: 19세기 미인의 조건’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소당 이재관(1783∼1837)의 미인도 4점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중국의 역사나 소설 속 인물로, 미모를 겸비한 재원(才媛)이다. ‘미인사서’의 여인은 여류시인이자 시 쓰는 종이를 잘 만들었던 당나라 미인 설도다. ‘선인취생’에서 생황을 부는 여인은 신선이 됐다는 농옥이다. ‘선인’에서 말 달리는 여성은 당나라 기생 홍불이다. ‘여협’에서 칼춤을 추는 여인은 당대의 무협소설 ‘홍선전’의 주인공이다.

시서화 삼절로 꼽혔던 신위(1769∼1845)가 아들인 신명연(1808∼?)의 유실된 미인도 ‘십이명원도’에 붙였다는 한시에서도 이런 특징이 발견된다. 이 시에는 서시 조비연 양귀비처럼 중국을 대표하는 미녀는 빠지고 나라를 구하려 흉노족에게 시집간 왕소군과 가을부채에 대한 시를 남긴 반첩여처럼 학덕과 재주를 겸비한 여인만 등장한다.

고 박사는 또 19세기 문헌에 여사(女史)라는 호칭이 자주 등장하는 것에 주목했다. 여사는 본디 궁궐 안 여성의 일을 기록하는 여성 사가를 뜻했는데 이 시절에 와서 ‘학덕이 높고 재주가 뛰어난 여성’으로 바뀌었다. 이는 재주를 감추고 사는 게 미덕이었던 조선시대 사대부 여성을 높여 부르던 여사(女士)와 차별되게 여성의 재능을 찬미하는 경칭이었다. 고 박사는 “이러한 여성관의 변화가 근대 이후 한국에서 전문적인 여성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데 문화사적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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