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안영식]리디아 고와 두 마리 토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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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식 스포츠부장
안영식 스포츠부장
프로와 아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돈’이다. 프로는 월등한 성과를 내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 하지만 머니 플레이어(몸값을 하는 선수)가 되지 못하면 스폰서는 떨어져 나가고 연봉도 깎인다. 반면 프로대회에 초청선수로 출전한 아마는 밑져야 본전이다.

‘골프 천재’로 불리는 뉴질랜드 교포 소녀 리디아 고(고보경·16)의 프로 전향 시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최근 쟁쟁한 프로들을 꺾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캐나디안오픈에서 2년 연속 우승했다. LPGA투어에서 아마가 2승을 거둔 것, 같은 대회를 2연패한 것은 리디아 고가 최초다.

게다가 그는 지난해부터 LPGA투어에 14차례 출전해 단 한 번도 예선 탈락이 없다. 올 시즌 한 라운드 평균 퍼트 수(29.03개), 평균 타수(70.51타) 등이 10위 이내다. 당장 프로 전향을 발표해도 손색이 없는 ‘차세대 기대주’다.

하지만 부담이 없던 일이 생계가 걸린 직업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스트레스가 필수적으로 따른다. 야구를 좋아하는 필자는 한동안 야구가 끔찍했다. 프로야구 담당 기자였을 때다. 특히 마감시간 임박해서 경기가 뒤집어지면 입술이 바짝 마르며 식은땀이 흐르기 일쑤였다. 일을 마치면 몸은 파김치가 됐다. “이미 써 놓은 기사의 주어와 목적어를 바꾸고 숫자 몇 개만 고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그는 야구 기사를 한 번도 써보지 않은 게 분명하다.

공교롭게 ‘과거의 골프 천재’ 미셸 위(위성미·24)는 현재 리디아 고와 똑같은 나이인 16세 때 프로 전향을 했다. 하지만 지금 미셸은 평범한 선수에 불과하다. 학사 관리가 엄격한 미국 스탠퍼드대에 입학해 학업을 병행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는 결국 스탠퍼드대를 중퇴하지 않았던가. 미셸은 프로 9년차지만 단 2승에 불과하고 올 시즌도 19개 대회에 출전해 우승은 고사하고 톱10 두 차례에 그치고 있다.

1998년 방콕 아시아경기 때 한국은 박지은을 골프 대표선수로 출전시키려 했으나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서 결석과 결시를 인정하지 않아 막판에 출전 선수를 교체했다. 신지애는 학점을 제대로 받지 못해 연세대를 휴학하기도 했다.

프로의 세계는 결코 녹록지 않다. ‘두 마리 토끼(프로골퍼+대학 졸업)’를 모두 잡기는 쉽지 않다. 일단 프로로 전향해 LPGA투어를 뛰려면 각종 경비로 한 시즌에 최소 3억 원가량이 필요하다. 스폰서가 없으면 버텨내기 힘들다. 한편 슬럼프가 길어져 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하는 사례도 많다. 한때 ‘천하무적’으로 군림한 쩡야니(대만)는 올 시즌 이름이 거의 거명되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부진에 빠져 있다.

한국 여자 골프선수들은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한다. 딱 대학 재학 기간이다. 그런데 리디아의 롤 모델은 바로 미셸이다. 리디아가 가고 싶은 대학도 스탠퍼드대다. 리디아가 프로 전향을 했을 때 반드시 지금의 경기력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보장은 없다. 롤 모델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어차피 프로골퍼가 최종 목표라면 한 우물을 파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골프는 굿 샷보다는 미스 샷에서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삶도 비슷한 것 같다. 누구든 공과(功過)가 있기 마련이지만 인생 항로에선 실수가 더 ‘결정적 영향’을 미칠 때가 많다. 그래서 골프와 인생은 닮았다고 하는가 보다.

안영식 스포츠부장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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