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걸스 “이대 나온 여자들 아닌 야구 선수로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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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9월 10일 07시 00분


1. ‘즐겁게 야구하기’를 목표로 내세우고 7일 역사적인 창단 첫 경기를 치른 ‘서울 이화 플레이걸스’ 선수단. 2. 아직은 실책을 남발할 정도로 여러 가지 면에서 서툴다. 그러나 야구에 대한 사랑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7일 ‘익산 어메이징’과의 첫 경기에서 1루 수비에 열중하고 있는 양지혜(왼쪽). 3. 그라운드에 나뒹굴어도 야구가 좋은 ‘이대생’이다. 플레이걸스 투수 봉예나(위)는 폭투 때 홈으로 파고 든 상대 3루주자를 막기 위해 홈플레이트에서 결코 몸을 사리지 않는다. 익산|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1. ‘즐겁게 야구하기’를 목표로 내세우고 7일 역사적인 창단 첫 경기를 치른 ‘서울 이화 플레이걸스’ 선수단. 2. 아직은 실책을 남발할 정도로 여러 가지 면에서 서툴다. 그러나 야구에 대한 사랑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7일 ‘익산 어메이징’과의 첫 경기에서 1루 수비에 열중하고 있는 양지혜(왼쪽). 3. 그라운드에 나뒹굴어도 야구가 좋은 ‘이대생’이다. 플레이걸스 투수 봉예나(위)는 폭투 때 홈으로 파고 든 상대 3루주자를 막기 위해 홈플레이트에서 결코 몸을 사리지 않는다. 익산|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나 이대(이화여자대학교) 나온 여자야!”

영화 ‘타짜’에서 정 마담으로 나온 배우 김혜수는 자신을 체포하러 온 경찰을 향해 턱을 치켜들고 매섭게 째려보며 한마디를 톡 쏘아붙인다. 그녀의 도도한 이미지와 자부심을 ‘이대’라는 한마디로 압축해 설명하는 듯한 장면이었다. 이처럼 ‘이대’ 하면 긴 생머리에 청순한 옷차림과 더불어 한쪽 손에는 핸드백을 들고, 한쪽 손에는 커피를 들고 다니는 여대생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의 편견에 반기를 든 이대생들이 있다. 핸드백 대신 방망이를 들고, 커피 대신 글러브를 끼고 그라운드 위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뛴다. 지난달 31일부터 전북 익산 국가대표야구전용훈련장(이하 익산구장)에서 열리고 있는 2013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주관 LG전자·익산시·한국여자야구연맹, 후원 익산시야구협회)에 당당히 참가신청서를 낸 이대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된 ‘서울 이화 플레이걸스’가 그 주인공이다. 7일 익산구장에서 신생팀 익산 어메이징팀과 창단 첫 경기를 치른 이들을 만났다.

● 이대를 향한 편견을 깨고 싶다!

“이대라는 말 빼주세요.” 7일 익산구장. 플레이걸스라는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역사적인 창단 첫 경기를 앞두고 몸을 풀고 있었다. 이대 출신으로만 구성된 팀이라는 사실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들은 입을 모아 “이대 얘기는 빼달라”고 부탁했다. 이대생으로서 자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대생이기 때문에 받는 오해와 편견이 싫어서였다.

“사실 저희 학교에 그런 학생들 많이 없어요. 김혜수 씨가 만든 이미지인 것 같아요. 저희 다 심하게 왈가닥이거든요.”(정은영) 실제 그랬다. ‘야구를 왜 시작했느냐’라는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야구가 좋다”며 이구동성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야구를 처음에는 보다가, 나중에는 응원하게 되고, 응원하다가 ‘직접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 거죠. 지난해 팀이 생겼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더라고요. 그런데 나와서 훈련하는 선수들은 20명 남짓이었어요.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멤버가 지금까지 왔어요.”(주장 백창은)

● 입술이 터져도 야구가 좋다!

플레이걸스의 시작은 야구 감독이었던 학교 근처 카페 사장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SK팬이자 카페 단골손님이었던 초대 주장이 사장님에게 “야구 좀 가르쳐 주세요”라고 했던 말 한마디가 팀을 탄생시켰다. 지난해 7월 창단돼 이제 1년 남짓 된 신생팀. 그나마 선수 출신 김성대 코치의 지도를 받으면서 조금씩 팀다운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이들에게 이제 멍이 드는 것쯤은 예삿일이 돼버렸다. 야구공에 맞아 눈이 퉁퉁 붓기도 했고, 어느 날은 입술이 터져 피를 뚝뚝 흘린 적도 있었다. 애지중지 딸을 키운 부모님들은 식겁할 일. “여자가 무슨 야구냐. 당장 그만둬라.” 잔소리도 참 많이 들었다. 그러나 부모님들도 그녀들의 열정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0개 중 9개 놓치지만 1개 플라이 볼을 잡았을 때 희열을 느껴요.”(하은정) “한시현이 플레이걸스의 이대호(오릭스)예요. 우리 팀 4번타자. 치고 던지는 게 타고 났어요.”(양지혜) “저는 삼진 잡았을 때요. 제대로 던져서 원하는 코스에 들어가서 삼진 잡을 때 짜릿해요.”(봉예나) 처음에는 마트에서 산 1∼2만원짜리 글러브를 꼈던 이들은 15만원짜리 비싼 글러브도 직접 구입해 낄 정도로 ‘하는 야구’에 많은 애정을 쏟고 있다.

● 첫 패배, 그러나 희망을 보다!

플레이걸스의 역사적 첫 경기. 상대는 올해 탄생한 익산 어메이징팀이었다. 익산 어메이징팀이 1승을 이번 대회 목표로 정했다면, 플레이걸스는 ‘즐겁게 야구하기’가 목표였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플레이걸스는 1회에만 10실점하며 무너졌다. 실책이 난무했다. 포수는 투수가 던지는 공을 포구하지 못했고, 야수들도 허둥지둥 정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플레이걸스 선수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한 타자를 아웃시킬 때마다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고, 흔들리는 선발투수에게 목청 높여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창단 후 첫 타점, 첫 득점을 올렸을 때 덕아웃은 잔칫집 분위기였다. “저희 팀은 이제 갓 걸음마를 뗐어요.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야구를 즐기는 게 목표입니다. 재미있어야 계속 야구를 할 수 있고, 그러다보면 잘할 수 있게 되잖아요. 아직 정식구장에서 훈련해본 적은 없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경험을 쌓으면서 한 단계 성장할 거라고 생각해요. 3∼4년 뒤에도 즐겁게, 재미있게 야구를 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그만큼 야구를 사랑하거든요.”(백창은)

익산|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트위터 @hong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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