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목원대 신학관 새 캠퍼스서 부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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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전 건물해체… 우여곡절 끝 복원
“목원 정신 살아났다” 동문들 환호

목원대 신학관이 복원됐다. 왼쪽은 목동 캠퍼스가 안정기에 접어들었던 1980년 당시 건물이고, 오른쪽은 2013년 도안동 새 캠퍼스에 복원된 모습. 목원대 제공
목원대 신학관이 복원됐다. 왼쪽은 목동 캠퍼스가 안정기에 접어들었던 1980년 당시 건물이고, 오른쪽은 2013년 도안동 새 캠퍼스에 복원된 모습. 목원대 제공
대전 중구 목동 목원대 옛 캠퍼스에 있던 ‘구(舊) 신학관’이 9일 서구 도안동 새 캠퍼스에 복원됐다. 이전 작업으로 건물이 해체된 지 꼭 14년 만이다. 목원대는 학교의 상징이자 모체였던 구 신학관의 복원을 ‘정신적인 제2 건학’과 같은 기념비적 사건으로 삼고 있다. 김원배 총장과 교직원, 학생들은 감사 예배를 올렸다. 학교 측은 이 건물의 근대건축물 등재를 추진하기로 했다.

○ 신학관 복원은 ‘목원 정신’의 부활

신학관은 목동 캠퍼스에서 1956년 봄 착공돼 같은 해 8월 준공됐다. 대학 설립자인 도익서(Charles D. Stokes) 박사의 사택과 남자 기숙사, 채플 등과 함께 가장 먼저 옛 캠퍼스를 구성한 건물이었다. 목원대는 이 신학관을 중심으로 확장됐다. 미국 감리교 선교부의 지원으로 지은 2층 붉은 벽돌의 이 건물은 목원대의 역사를 지켜 오면서 감리교 목회자를 배출하는 산실이었다. 대전지역 최초의 사립대로 출발한 목원대는 지금까지 이 신학관을 통해 3000여 명의 목회자를 배출했다.

이토록 의미 있는 건축물이었지만 신학관은 1999년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캠퍼스 이전으로 그해 4월 건물 철거 작업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신학관은 건축 폐기물로 버려질 예정이었지만 이사 준비로 바빠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근대건축사의 대가인 이 대학 건축학부 김정동 전 교수(65·8월 정년퇴임)가 신학관을 살려냈다. 그는 작업복차림으로 건물 철거 현장을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신학관을 이루고 있던 벽돌 4만장과 창틀, 문짝, 물받이, 현관문 등을 모아 새 캠퍼스로 옮겼다. 벽돌은 캠퍼스 한편에, 나머지 건축 재료는 자신의 연구실에 쌓아 두었다. 연구실은 건축 자재 창고로 변했다.

그는 20002년 2월 신학관의 중요성과 복원의 필요성을 담은 ‘목원대 목동캠퍼스 신학관 복원 설계 보고서’를 학교에 제출했다. 건물 철거 전에 미리 학생들과 함께 실측을 거쳐 복원 설계도를 마련해 두었다.

○ 건축사 대가와 총장, 동문, 지역사회 합작품

새로 이사한 목원대 도안동 캠퍼스는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구석이 적지 않았다. 현대적 조형미를 갖췄고 점차 세월이 지나면서 나무도 울창해졌지만 신설 학교 같은 느낌은 여전했다. 역사성과 정체성을 보여 주는 건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신학관 복원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은 김 총장이었다. 그는 2010년 “목원 정신의 표상이 더 표류해서는 안 된다”면서 취임과 함께 ‘구 신학관’ 복원을 약속했다. 신학관 복원에는 이사회와 대학, 동문회, 지역사회 280여 명이 19억8000여만 원을 기부했다. 복원된 신학관은 채플 남쪽에 연면적 1581.85m²(약 470평)에 지상 2층, 지하 2층으로 지어졌다. 지붕은 기와로 마감했다. 외벽 공사에 쓰인 벽돌은 김 교수가 보관해 온 벽돌이 사용됐다. ‘복원’이라는 말이 가능한 이유다. 김 전 교수는 “6·25전쟁 직후인 1950년대에는 전국적으로 이렇다 할 건축물이 없어 신학관이 갖는 근대건축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고 말했다. 신학관에는 대학과 감리교회사 자료실 등이 들어선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목원대#신학관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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