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업계 2년 걸려 만든 ‘화평법’ 합의案, 국회 16일만에 뒤집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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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법안 “안전위해 신규 화학물질 모두 등록”
산업계 “기업기밀 새나가 연구에 차질 우려”

올해 4월 국회를 통과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5월 개정된 ‘유해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에 대해 경제계가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화평법과 관련해 22개월간 정부와 논의해 내놓은 법안이 묵살되고 한 차례 공청회를 거친 새 법안이 상정 16일 만에 통과된 데 대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제계는 강화된 법안에 따라 신규 화학물질 등록 시 필요한 자료와 보고서를 준비하는 데 8∼11개월이 걸리고 비용도 연간 사용량이 10t이 넘을 경우 물질당 평균 5700만∼1억1200만 원이 드는 등 행정적 경제적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수입량이 연간 0.1t 이하여서 유해성 심사를 면제받은 건수는 3만5000건에 이른다. 화학업체 관계자는 “소량 화학물질을 수입할 때 2, 3일이면 신고가 끝나던 것이 8개월 이상 걸리게 되면 연구개발(R&D)을 하지 말라는 얘기와 같다”라고 말했다.

2007년 유럽연합(EU)이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를 도입하는 등 해외에서 화학물질에 대한 관리 체계를 강화하자 국내에도 법 제정 움직임이 시작됐다. 2010년 말부터 정부와 산업계는 17회에 걸친 간담회를 통해 합의안을 이끌어냈고 지난해 9월 정부는 화평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올해 4월 8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보다 강력한 규제를 담은 화평법 제정안을 발의하면서 방향이 틀어졌다. 심 의원은 사용량에 관계없이 모든 신규 화학물질을 등록하고, 기존 화학물질은 연간 사용량이 0.5t 이상인 경우 모두 등록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4월 30일 내놓은 조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때까지 한 화학기업의 팀장급 관계자 한 명이 패널로 참석한 가운데 공청회를 한 차례 연 것으로 공식적인 업계 의견 수렴 절차를 마쳤다.

지난해 경북 구미 불산 누출 사고를 계기로 개정작업에 힘을 받은 화관법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과징금을 사업장 매출액의 5%까지 물릴 수 있다는 강력한 처벌 규정을 담고 있지만 발의한 지 32일 만에 입법 절차가 끝났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공개된 환노위 회의록에 따르면 국회 논의 과정에서 현장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4월 18일 열린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가 심 의원이 발의한 화평법이 통과됐을 경우 직접 등록비용만 2조1000억 원, 간접비용까지 합치면 3조3000억 원이 든다는 용역 결과를 전하자 심 의원은 “간접비용 얘기는 빼시라. 중소기업의 경우 100만 원밖에 안 나온다”며 반박했다.

또 산업부 관계자가 중소기업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하자 최봉홍 새누리당 의원은 “대기업 얘기(규제)를 해야 하는데 중소기업을 들고 나와 국민들의 동정을 얻으려고 한다”고 질책했다. 한국화학물질관리협회에 따르면 국내 화학물질 제조, 수입업체 중 중소기업이 95%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심 의원 측은 “산업계의 요구를 반영해 기존화학 물질에 대한 등록 규정이 오히려 당초 발의안의 0.5t에서 1t으로 완화됐다”고 반박했다. 또 “당시 입법을 앞두고 공청회를 한 차례 연 것은 맞지만 법을 발의하기 전 1년 동안 에너지포럼을 만들어 업계 및 당시 지식경제부와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며 “기업은 재무적 관점에서 비용을 계산하지만 국회는 국민과 근로자의 안전을 고려해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강유현·황승택 기자yhkang@donga.com
#화평법#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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