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다마스-라보, 누적판매량 37만2256대… 일렬로 세우면 대한민국 한바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23년 삶 마감하는 ‘영세상인의 단짝’ 다마스-라보

23년 삶 마감하는 '영세상인의 단짝' 다마스-라보

“국민을 위한 상용차가 태어났습니다.”

1991년 11월 4일. 대우자동차(현 한국GM)가 경형 밴 ‘다마스’와 경형 트럭 ‘라보’를 세상에 내놓은 날이다. 대우차는 1991년 5월 경차 ‘티코’를 선보인 후 6개월 만에 경상용차 2종을 내놨다.

다마스는 대우차와 기술제휴를 맺은 일본 스즈키자동차의 밴 ‘에브리’를, 라보는 트럭 ‘캐리’를 기반으로 개발됐다. 생산은 대우조선(현 대우조선해양), 판매는 대우자동차판매가 각각 맡았다. 커다란 승합차나 트럭과 비교하면 왜소하다는 인상을 주는 다마스와 라보는 ‘앞마당까지 들어오는 차’라는 광고 문구로 관심을 끌었다.

두 차종이 한국 자동차산업 역사에 남긴 발자취는 적지 않다. 올해로 23년째 생산되고 있는 다마스와 라보는 국산차 중흥기의 상징이다. 경차 중에서는 역대 최장수 모델이기도 하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2002년 대우차를 인수해 설립한 GM대우자동차가 2011년 사명(社名)을 한국GM으로 바꿔 ‘쉐보레’ 브랜드를 도입했을 때도 다마스와 라보는 대우 로고를 유지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우차의 마지막 생존자. 그마저도 시한부 선고를 받은 두 차종의 일생을 돌아봤다.

국민차 보급이 시초… 소상공인의 단짝으로 자리매김

다마스와 라보는 1983년 정부가 수립한 국민차 보급 추진계획에 따라 개발됐다.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를 절감하고 농촌에 저렴한 다목적차를 보급하기 위해 국내 자동차업계에 경차 개발을 요청했다. 당시 일본 자동차업계는 잇달아 경차를 내놓으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당시 정부 방침은 “200만∼300만 원대로 배기량 800cc급 국산 국민차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1983년 현대자동차가 판매하던 1.6L급 중형차 ‘스텔라’ 가격이 600만 원대였던 만큼 배기량도, 가격도 일반 승용차의 절반 이하로 줄이라는 얘기였다.

낮은 수익성이 예상됐기 때문에 대부분의 자동차업체가 사업 참여를 꺼렸다. 업체들은 해외 자동차업체와 기술제휴를 맺고 “경차 개발을 검토하겠다”는 입장만 내놓으며 시간을 끌었다. 자동차업계가 선결 조건으로 내건 정부의 특별소비세 면제 승인이 차일피일 미뤄진 탓도 있었다. 그나마 경차 개발에 적극적이었던 대우차는 당시 지분 50%를 갖고 있던 GM이 신규 투자에 난색을 표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대우차는 계열사였던 대우조선을 통해 경차를 내놓는 방안을 선택했다. GM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대우조선은 1989년 4월 5050억 원을 투자해 경남 창원에 연간 생산능력 24만 대 규모인 국민차공장을 착공했다. 140여 대의 조립로봇을 설치해 자동화 비율을 80%까지 늘렸다. 당시로는 최첨단 공장이었다.

1991년 11월 대우조선 창원공장의 준공과 함께 판매를 시작한 다마스와 라보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출시 당시 가격은 다마스가 426만 원, 라보는 357만 원이었다. 차를 내놓은 지 1년여 만에 판매량이 2만 대를 넘어섰다. 상용차로서는 이례적인 성공이었다. 유지비가 적게 드는 데다 차체가 작아 주차하기 쉬워 소규모 자영업자를 위한 대표적인 차로 자리매김했다.

다마스와 라보의 성공을 본 경쟁업체들도 경상용차 개발에 나섰다. 아시아자동차는 일본 다이하쓰와 기술제휴를 맺고 배기량 796cc인 경상용차 ‘타우너’를 1992년 내놓았다. 다마스의 유일한 경쟁 상대였던 타우너는 1998년 아시아차의 모기업 기아자동차가 현대차로 인수된 이후에도 명맥을 유지했지만 2002년 배기가스 규제 강화로 후속 차종 없이 생산이 중단됐다.

작은 거인의 퇴장

타우너가 단종된 후 특정한 경쟁모델이 없던 다마스와 라보는 오랜 기간 인기를 끌었다. 1991년 시판 이후 올해 8월까지 내수시장에서 누적 판매대수는 다마스 20만3501대, 라보 10만149대로 총 30만 대를 돌파했다. 1992년 우즈베키스탄을 시작으로 해외로도 수출됐다. 해외 판매가 늘어나자 대우차는 1993년 우즈베크자동차공업협회와 합작회사 ‘우즈-대우’를 설립했다. 또 1996년 현지에 연간 생산능력 20만 대인 공장을 준공했다. 다마스는 현재까지도 우즈베크에서 생산되고 있다. 해외까지 합친 다마스와 라보의 누적 판매량은 37만2256대. 차 1대당 길이를 3.5m로 계산해 일렬로 세우면 대한민국을 한 바퀴 일주하는 거리(약 1300km)와 맞먹는다.

다마스와 라보의 판매량은 경기와 무관하지 않았다. 외환위기의 여파로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던 1999년은 다마스가 역대 최다 내수 판매량을 기록한 해다. 전년 대비 약 2배로 늘어난 1만3380대가 팔렸다.

사실 다마스와 라보의 성능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다. 배기량 796cc의 액화석유가스(LPG) 엔진으로 최고출력이 41∼43마력에 불과하다. 현재 한국GM이 생산하는 경차 ‘스파크’(70마력)보다 최고출력이 낮다.

인기의 비결은 저렴한 가격과 유지비, 경차치고는 넓은 적재공간이다. 가솔린보다 저렴한 LPG를 연료로 사용하고 구입 시 취득·등록세(신차 가격의 7%)가 면제된다. 고속도로 통행료와 공영주차장 주차비도 절반이다. 국내에서 팔리는 상용차 가운데 경차 혜택을 받는 건 다마스와 라보뿐이다. ‘돈 버는 차’ 소리를 듣는 이유다.

좁은 골목길을 누비기 편하다는 장점도 부각됐다. 다마스의 폭은 1.4m로 1t 트럭보다 34cm 짧다.

23년간 생산되면서도 외관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디자인이나 성능보다 경제성에 초점을 맞춘 차였다. 다마스는 1995년부터 원형이던 전조등을 사각형으로 바꿨다. 2003년에는 외관을 살짝 다듬은 2세대 모델(B150)이 나왔다. 2008년 배기가스 배출량을 줄인 3세대(B175)가 현재까지 판매되고 있다.

전영선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소장은 “세계 자동차 생산 5위인 한국에서 경상용차 한 대 만들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자동차업계와 정부는 소상공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마스와 라보의 원조를 만들었던 일본은 완성차업체별로 꾸준히 다양한 경상용차를 내놓고 있다. 누적 판매 대수는 1000만 대가 넘는다.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다마스#라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