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재명]풍금이 없는 자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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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강원도 산골마을 한 국민학교에 부임한 21세 새내기 총각 선생님 강수하. 막냇동생을 둘러업고 교실로 들어선 17세 늦깎이 국민학생 홍연. 홍연은 수하를 짝사랑하지만 수하의 마음은 같은 학교 양은희 선생님을 향해 있다. 다소 뻔한 스토리의 통속 로맨스는 추억과 향수(鄕愁)를 자극하며 관객들을 스크린 속으로 빨아들인다. 1999년 개봉한 영화 ‘내 마음의 풍금’에는 그 시절 그리움의 편린들이 가득하다. 영화에서 수하와 은희는 함께 풍금을 치며 교감한다. 가까이 가면 다시 멀어지는 젓가락행진곡을.

▷풍금은 1896년경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온 것으로 추정된다. 1909년 4월 27일자 황성신문에는 ‘관립고등학교에서 풍금을 사용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온다. 우리나라의 서양음악 교육은 그렇게 풍금과 함께 시작됐다. 옛 학교 풍경을 재현한 박물관마다 풍금과 조개탄 난로를 가져다놓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신경숙의 소설 ‘풍금이 있던 자리’가 2002년 미국에서 번역됐는데, 제목이 ‘눈먼 송아지’로 바뀌었다. 미국 독자들이 학창시절 하면 곧바로 풍금을 떠올리는 한국적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풍금이 초등학교에서 사라졌다. 대신 아이들은 컴퓨터 학습프로그램을 따라 동요를 배운다. 2005년경부터 ‘교단선진화’ 정책에 따라 컴퓨터를 활용한 학습자료를 개발하면서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려면 반드시 오르간(풍금) 연주 시험을 봐야 했지만 이 제도도 1998년 없어졌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교육 방식도 달라져야겠지만 노래방도 아닌 학교에서 기계음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는 현실이 왠지 서글프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 학교 예체능 교육의 강화를 약속했다. 예체능 교육이 인성 확립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풍금의 퇴출은 아쉽다. 정확한 음정과 박자를 배우는 것 못지않게 노래와 연주가 녹아드는 방법을 익히는 것도 음악 교육의 중요한 목표 아니겠는가. 좀처럼 접하기 힘든 아날로그의 감성도 키울 겸 말이다. 언젠가 아이들은 풍금 소리를 아는지, 아니 풍금을 본 적이 있는지를 두고 세대를 가를지 모르겠다.

이재명 논설위원 egija@donga.com
#풍금#초등학교#컴퓨터 학습프로그램#동요#예체능 교육의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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