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승호]‘강덕수 신화’ 지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자금난에 빠진 STX그룹의 강덕수 회장에 대해 채권단이 사임을 요구했다. STX 측은 반발하고 있지만 올해 4월 채권단에 구조조정 자율협약(공동 관리)을 신청할 때 ‘경영권은 채권단 결정에 따르겠다’는 확약서를 제출해둔 상태다. 강 회장이 약속을 어기고 채권단 요구를 거부할 경우 당분간은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금융 지원이 끊기면서 기업 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강 회장에게 따라다니던 말이 ‘샐러리맨의 신화’다. 동대문상고 졸업 학력으로 1973년에 쌍용양회에 입사해 쌍용중공업 상무가 될 때까지 유능한 회사원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쌍용중공업은 외국계 컨소시엄에 넘어갔고 2000년 회사가 매물로 나오자 그는 집 등을 팔아 20억 원을 마련해 인수했다. 2001년 회사 이름을 STX로 고친 후 지금의 STX조선해양인 대동조선을 인수해 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키웠다. 2002년에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에 이어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아커야즈(현 STX유럽)를 인수했고 STX중공업, STX건설, STX다롄을 창업했다.

▷STX는 한때 재계 순위 10위권으로 진입했지만 작년 말 현재 13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하향세로 꺾였다. 전 세계 교역이 줄면서 조선과 해운의 쌍끌이 불황이 시작됐으며 조선·해운이 주력인 STX도 직격탄을 맞았다. 빠른 성장을 뒷받침했던 과감한 인수합병 전략이 불황기에 자기 발목을 잡는 자충수가 됐다.

▷윤석금 웅진 회장의 퇴진에 이어 강 회장이 궁지에 몰리면서 그들과 같이 돼보겠다며 회사 생활을 하는 ‘샐러리맨의 꿈’이 모두 스러질까 걱정스럽다. 그가 물러나면 재계 20위 그룹 중 창업 1세대 오너는 하나도 없어진다. 앞서 안병균 나산, 나승렬 거평, 임병석 C&그룹 회장 등 화제의 창업자들이 줄줄이 스러졌다. 정점에는 역시 김우중 대우 회장이 있다. 한국은 ‘창업자의 무덤’인가. 창업자 특유의 과감한 성장 전략 이면에 위기관리에는 소홀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현 정부는 ‘창업이 활발한 창조경제’를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