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의 ‘이념적 소신’ 때문에 국민 세금으로 거액 배상할 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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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계 대형마트인 코스트코(COSTCO)의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은 울산 북구 윤종오 구청장(51)과 북구에 3억67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통합진보당 소속인 윤 구청장은 중소상인과 골목상권 보호를 명목으로 적법하게 신청된 대형마트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았다가 북구와 함께 거액을 물어줘야 할 처지에 몰렸다.

울산지법 제3민사부(부장판사 도진기)는 5일 코스트코 건축허가를 맡았던 진장유통단지사업조합(유통조합·이사장 황병각)이 윤 구청장과 북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선고공판에서 “적법하게 신청된 건축허가를 수차례 반려해 유통조합에 손해를 끼친 사실이 인정된다”며 “윤 구청장과 북구는 연대해서 3억67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윤 구청장의 불법행위로 코스트코 건축허가가 지연된 72일간(2011년 6월 20일∼8월 30일)의 임대수익 손실금 및 보증금에 대한 시중금리(3억6700만 원)를 배상하라고 밝혔다.

코스트코는 울산 북구 진장동 유통단지 내 3만593m²(약 9260평)에 지상 4층 건물을 짓겠다며 2010년 8월 24일 관할 북구에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유통조합이 건축허가 신청을 대행했다. 울산 북구의회는 “울산의 14개 대형마트 가운데 북구에 이미 4개가 있는데 또 대형마트가 입점하면 중소상인들은 더욱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만장일치로 코스트코 입점 반대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북구는 같은 해 10월 18일 건축심의를 하지 않고 반려했다. 당시 민주노동당 소속이었던 윤 구청장은 “지역 중소상인과 농민들의 생존권 확보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건축허가 신청을 반려했다”고 밝혔다.

이에 유통조합은 울산시행정심판위원회에 제소했다. 울산시 행정부시장이 위원장인 행정심판위는 ‘울산시가 해당 용지를 2003년 5월 대형 판매시설 용도로 지정한 곳인 만큼 코스트코가 적법한 절차로 점포 개설을 신청하면 안 받아줄 이유가 없다’며 건축허가를 내주라고 결정했으나 윤 구청장은 이를 무시하고 허가를 계속 반려했다. 2011년 8월에는 시 행정심판위가 ‘건축허가 의무를 2011년 8월 29일까지 이행하라’고 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유통조합은 시 행정심판위의 ‘직접처분’(행정심판위가 직접 허가 처분을 하는 것)을 통해 건축허가를 받아 2011년 8월 30일 착공해 지난해 8월 문을 열었다.

유통조합 측은 2011년 8월 윤 구청장을 행정심판법 위반으로 고소했고 이어 윤 구청장과 북구를 상대로 총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울산지검은 지난해 6월 윤 구청장을 기소했고, 울산지법 형사1단독 김낙형 판사는 올 1월 “행정심판위의 결정을 무시하고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은 것은 단체장의 재량권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며 윤 구청장에 대해 벌금 1000만을 선고했다.

윤 구청장은 5일 3억6700만 원 배상 판결이 내려진 직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어이없는 판결이다. 영세상인과 골목상권을 보호하려는 자치단체장의 고뇌를 재판부가 간과했다.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청장의 이념적 소신 때문에 법적 절차를 이행하지 않아 국민 세금으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해줘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은 지자체 수장으로서의 올바른 처신은 아니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 코스트코 ::

1976년 프라이스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처음 문을 열어 올해 6월 현재 세계적으로 627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에는 9개 매장이 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코스트코#윤종오#유통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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