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53>당신의 차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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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차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심재상(1955∼)

헐떡이며 가파른 오르막길을 기어 올라온 관광버스들이 줄줄이 휴게소로 들어온다. 그늘 한 점 없는 마당 한복판 펄펄 끓는 콘크리트 위에서 그만, 혼절해버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 안의 좁은 통로에 몰려나와 팔뚝을 걷어붙인 채 겅중겅중 뛰고 있는 중년의 아낙네들. 대체 무슨 힘이 닫힌 차창을 꿰뚫고

빤짝, 빤짝, 이느은 희미이한 기어억 속에

한번 보라니까 저 아래
8월의 햇살 폭포처럼 쏟아져내리는
막무가내의 오르막길 저속 차선도 없는
속수무책의 내리막길 이날 이때껏
칡넝쿨이 되어 호박덩굴이 되어
휘감으며 매달리며 기어온 내 인생
용서 못해 절대로 용서 못해

이날 이때껏
그 무슨 낙으로
그 무슨 열병으로
옘병할
말해보라니까 대체 무슨 수로
오늘 미소 지을 줄도 모르는 당신이
내일 앞산이 출렁이게 웃을 수 있겠냐구

만날 수 없어도 잊지는 말아욧
당신을 사랑했어욧

고속도로 휴게소나 온천장 주차장에 쿵짝쿵짝거리며 들어선 관광버스에서 아주머니 아저씨가 벌겋게 취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줄줄이 내린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어깨춤을 추는 이도 있을 테다. 일분일초가 아까워, 버스가 마을을 벗어나기 전부터 술을 돌리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을 테다. 까맣게 기미 낀 얼굴에 분을 바르고 가장 좋은 옷을 입은 나이 든 아주머니들이 자기를 있는 그대로 터뜨리셨을 테다. 그이들은 악을 쓰며 노래를 부른다. 평소 화통한 이나 수줍은 이나 하나같이 잘 노신다. 버스가 들썩거리는 저 관광버스의 에너지! 한여름 더위를 참고 고추밭을 매는 힘일 테다. 억척스레 일한 당신들 악착같이 노신다.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함께 이룬 대한민국이라지. 그 주춧돌인 분들께 삼가 감사드린다. 우리 민족의 근원적 열정과 에너지를 듬뿍 느끼게 하는, 어쩐지 뭉클한 관광버스 풍경을 생생히 그린 시다. 주민들이 관광을 떠나 텅 빈 마을, 농작물도 잠시 숨을 돌리고 조용히 바람과 햇빛 속에서 여물어 갈 테지.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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